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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 기로에 섰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23일 임 전 차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국고손실,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이 공범으로 적시됐다.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이후 4개월여 만에 첫 구속자가 된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권도현 기자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농단 수사가 중대 분기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임 전 차장은 재판 거래, 법관 사찰, 검찰·헌법재판소 기밀유출 등 법원 조사와 검찰 수사로 드러난 거의 모든 의혹에 깊숙이 연루된 인사다. 검찰이 영장에 기재한 개별 범죄사실만 30개에 이를 정도라니, 그의 역할을 짐작할 만하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신병을 확보하면 양 전 대법원장과 전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몸통’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게 된다. 반면 영장이 기각될 경우 이들을 향한 수사는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임 전 차장의 구속 여부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법원은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청구한 각종 압수수색영장을 90%가량 기각했다. 구속영장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한 차례 청구됐으나 역시 기각됐다. 전례로 미뤄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듯하다. 국회에서 ‘법관만 법 앞에 평등하다’는 비판까지 나왔으니 이런 관측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러나 예단하지 않으려 한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심사는 한 전직 고위법관의 신병처리를 결정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불신과 비판을 넘어 조소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법원이 주권자의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가름하는 자리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연 법원이 이러한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구현할지 온 나라가 지켜보고 있다. 이번에도 조직 보호 논리에 흔들렸다가는 사법 신뢰 회복의 길이 요원해질 것이다. 법원은 오로지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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