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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괴담이 무성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을 뒤돌아보니 다리가 없더라 이런 얘기가 아니었다. 자식들의 성적을 염려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어느 교사의 범죄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어느 학교에서는 이사장 딸의 내신을 올려주기 위해 교장이 직접 나서서 성적표를 고치도록 했으며, 어느 학교에서는 일부 학생에게 교내 상을 몰아줬다고 했다. 학생기록부를 제대로 쓰는 교사가 거의 없다는 말도 나왔다. 그 얘기를 듣던 이는 과거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며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교사가 직접 제자의 과외를 해주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받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원한에 서린 귀신들이 등장하는 것보다 섬뜩한 학교괴담의 결말은 올곧고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훨씬 많을 거라는 열린 결말이었으나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 그가 말을 꺼냈다. 열일곱 살 때 세상에 반항하던 자신을 잡아준 은사 얘기였다. 세상과 도저히 타협점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들이박던 시절, 갓 부임한 이십대 초반의 선생님은 되지도 않는 제자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줬다고 했다. 어른들은 흔히 네 나이 때는 다 그래, 곧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라며 상투적으로 얘기했지만, 그 선생님은 자신의 불안과 방황을 한 인간의 아픔으로 받아주고 감싸줬다는 것이다. 그는 그 선생님의 고향 집 앞바다를 얘기했다. 강릉에서 한참 더 들어간 어느 바닷가에서 자신의 허리춤에 비닐봉지를 묶어주고 조개를 잡으라 했던, 그 여름 방학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아마 조개가 아니라 제 마음을 잡으라 하신 거겠지요. 지금도 교직에 계시는데 젊었을 때처럼 여전히 아이들을 잘 챙기시더라고요.”

그의 말을 듣던 이들은 하나둘 잊을 수 없는 은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대개 인생에 한 명쯤 좋은 기억을 남긴 은사가 있다. 그들 덕분에 아이들은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들은 여전히 학교와 교사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부디 지금의 아이들도 그러하길, 학교괴담에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길….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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