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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박영수 특검팀은 청와대 관계자와 문화체육관광부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조사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배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이고,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 주도로 블랙리스트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분야와 장르를 초월한 최씨의 문어발식 국정농단 의혹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소속 예술인들이 지난달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한 뒤 현 시국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최씨의 블랙리스트 작성은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미르재단 설립 등 문화사업으로 한몫 챙기려 했던 최씨로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사전에 파악해 제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예술인들을 눈엣가시로 여긴 박 대통령과도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청와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이나 정치 풍자물 <여의도 텔레토비> 등을 제작한 CJ 이미경 부회장에게 퇴진 압박을 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안통치의 화신인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등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교육문화수석실과 문체부에 내려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가 1만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정보원이나 경찰 등이 동원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 작성은 헌법 위반이다.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장관 재직 시절 정부의 블랙리스트 적용 움직임과 관련해 2014년 1월과 7월 박 대통령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문화파괴 행위를 하면서 겉으로는 문화융성 운운했던 것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사실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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