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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8명이 그제 입장문을 내고 “헌재 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물론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조속히 임명절차가 진행돼 헌법재판소가 온전한 구성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야당이 다투면서 헌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재판관들이 직접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재판관들이 자기 기관에 대해 단체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그만큼 사태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입장을 밝히게 된 직접적 원인은 청와대가 제공했다.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준이 거부된 김이수 소장대행이 야당에 의해 국감 업무보고를 거부당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야당을 비판했다. ‘헌재 재판관 전원이 김 권한대행 체제에 동의했다’며 김 대행 체제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한 것은 한시적으로 김이수 재판관이 대행을 맡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지 언제까지나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헌재 소장 임기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닌데 입법 미비가 해소돼야 소장을 임명하겠다고 한 것도 논리가 박약하다. 야당 또한 청와대를 탓할 처지가 못되는 것은 물론이다. 당초 이번 사태는 야당이 이념공세를 펴다 종국에 김 대행 인준안을 부결시킨 것에서 촉발됐다. 이것도 모자라 야당은 국감장에서 보고를 거부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며 국감을 마비시켰다.

헌재의 비정상적 상황은 헌법재판소법에 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재판소장의 임기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새로 6년을 보장해야 할지, 아니면 잔여 임기만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반복돼왔다. 국회가 이 입법 미비를 해소해야 문제가 풀린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이 있는 만큼 여야가 당장 심의에 나서야 한다.

이와 별도로 청와대도 조속히 새 헌재 재판관과 소장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 자칫 김 소장 대행체제가 그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갈 수 있다. 이는 말이 안된다. 청와대는 새 재판관을 임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청와대와 헌재 재판관 입장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재차 입장을 밝혀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모양이다. 이 문제를 놓고 야당과 계속 대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청와대나 야당 모두 헌재 재판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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