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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상황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후 그의 퇴진 방법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지리멸렬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며칠 전 일부 원로 정치인들이 제시한 ‘4월 말 퇴진, 6월 말 대선’을 어제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탄핵에 앞장서겠다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비박근혜계가 손바닥 뒤집듯 견해를 바꾼 것이다.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는데 굳이 탄핵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게 명분이다. 그러나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다.

청와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박 대통령의 3차 담화가 퇴진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퇴진 시점을 정하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던진 뒤 벌어진 정치권의 혼란상을 즐기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안은 애초부터 빈 카드이며, 탄핵대오를 흩트러뜨려 반전의 기회를 찾기 위한 시간벌기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시점을 밝히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앵무새처럼 “여야가 합의해달라”고만 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가 정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런 태도라면 설령 협상한다 해도 청와대는 협상 결과를 꼬투리 잡아 시간을 벌 것이 뻔하다. 보수세력이 결집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비열한 꼼수이자 치사한 연명책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비박 세력 또한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새누리의 재탄생이 아니라 친박이 힘을 잃은 자리에 자신들이 들어가 낡은 새누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기로 한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자신은 오로지 선의로 국정을 수행했다고 말해 인식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그제는 국민 대통합을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에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극우성향의 목사를 앉혔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했다는 대구 서문시장 방문도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차 안에서 눈물 흘렸다는 내용까지 대변인이 브리핑하는 것을 보면 대구에서 지지여론을 불러일으켜 보겠다는 계산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국가를 위해 일한다지만 다 거짓말이고 오로지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시민들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의 퇴진 약속은 허구일 뿐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행동은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시민의 시선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뛰어넘어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술책도 끝없이 타오를 촛불을 견딜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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