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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의 과오와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논란이 돼온 역사 인식 문제에 전향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긍정 평가한다.


박 후보는 산업화·민주화의 성취를 언급한 뒤 “압축적 발전 과정에서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때론 굴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적적 성장 뒤편에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은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이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회견을 맺었다.


생각에 잠긴 박근혜 후보 (경향신문DB)


지난 10일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두 개의 판결’을 언급하며 역사적 판단에 맡기자고 했다. 다음날에도 ‘(2007년 재심 판결과 다른) 여러 증언’을 언급하며 역사의 판단을 재론했다. 일련의 발언은 역사적·법률적으로 분명히 드러난 사실을 부인한 것이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제 회견은 이 같은 인식에서 탈피해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과오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의미가 작지 않다.


우리는 그럼에도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후보는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발언을 취소하거나 정정하지 않았다. ‘헌법가치 훼손’은 의미있는 평가이지만 추상적 개념이다. 5·16을 쿠데타로 정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혁당 발언 후 2주 사이 역사관이 달라진 데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보다 냉정하게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을 뿐 문제된 발언은 왜 했는지, 생각이 바뀌었다면 무엇 때문에 바뀐 것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의 연계성을 부인하는 것도 문제다. 시민들이 박 후보의 과거 인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고 나아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박 후보가 지지율이 하락해 수세에 몰리자 마음에 없는 말로 사과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이 단지 인혁당 유족들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박 후보 사과의 진정성 여부는 향후 행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라 본다. 그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는 첫 단추는 인혁당 유족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상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문제와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 규명 작업에도 박 후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추상적 언어보다 구체적 실천으로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려는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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