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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검사들에게 참여정부 시절은 악몽같은 시기였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는 공안 분야에서 사사건건 부딪쳤다. 대표적인 게 2003년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간첩사건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공안 대책회의로 돌아가 보자.
청와대는 송 교수의 구속영장 청구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검찰 공안부는 송 교수의 간첩 혐의를 확신했다. 보수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 탓에 송 교수에게는 이미 간첩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검찰은 청와대의 의중에도 불구하고 송 교수의 구속수사는 피할 수 없다고 버텼다. 청와대 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거웠다. 회의를 주재한 청와대 고위층은 검찰이 고집을 꺾지 않자 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을 무작정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청와대 간부는 회의 도중 밖에다 얼음물을 시킨 뒤 벌컥벌컥 소리내어 마시면서 끓어오르는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참여정부 청와대와 공안검찰의 ‘불편한 동거’를 엿볼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다. 당시 회의를 주재한 인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교수는 5년 만인 2008년 7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간첩 누명을 벗었다.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박만 1차장은 이 사건 때문에 청와대에 찍혀 결국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옷을 벗었다. 그는 정권이 바뀐 뒤 사실상 ‘복권’돼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검찰 공안부는 참여정부 때 철퇴를 맞았다. 전국 지방검찰청의 공안부서는 대부분 폐지됐다. 한때 승진과 출세의 보증수표였던 공안검사는 한직으로 밀렸다. 신임 검사들도 한사코 공안부서를 기피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안검찰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종북 좌익세력 척결’을 앞세운 한상대 검찰총장 취임 이후 급속하게 영역을 키우는 중이다.
대선 앞둔 대검 전국공안부장검사 회의 (출처: 경향DB)
검찰 공안부는 요즘 각종 정치 사건이 몰리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불법 경선 의혹뿐 아니라 대선 정국을 맞아 여야 정치권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도 검찰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선캠프를 책임진 홍사덕 전 의원도 검찰의 소환 통보를 기다리는 중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의혹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여야의 금품수수 의혹은 수사결과에 따라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검찰이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내년 새 정부 출범 후 불어닥칠 검찰 개혁 파고가 걱정인 검찰로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진행 중인 4·11 총선 선거사범 수사도 공안검찰의 비밀무기다. 총선 당선자 16명이 기소된 데 이어 당선자 48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무더기 재·보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 여의도 정계개편은 검찰에 물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총장은 최근 전국 공안부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흑색선전 사범은 고소 취소 여부를 불문하고 구속수사하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공안3부(공공안전형사부)를 신설한 것도 공안 부활의 한 단면이다. 한 총장은 “공안 업무가 과중해 이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거 업무를 제외하면 공안의 주요 업무인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나 노동·학원 사건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검찰의 공안3부 신설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는 공식 성명을 내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공안의 부활은 일반인들에게도 그리 달갑지 않은 얘기다. 인터넷상에서 제기되는 표현의 자유 논란도 공안의 과도한 법 집행이 부른 결과물이다. 과거 간첩단 조작사건이나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붙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도 상당 부분 공안의 몫이었다.
공안이 불신의 대상이 된 이유는 또 있다. 핵심 업무 중 하나인 노동 사건에서도 공안은 진실을 외면했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2004년 현대차와 102개 사내 협력업체 대표를 불법파견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노동부도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3년 뒤인 2007년 관련자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현대차의 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기나긴 소송 끝에 대법원 승소 판결을 끌어내면서 검찰의 잘못된 법 집행이었음이 입증됐다. 당시 검찰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뤘다면 비정규직의 설움과 고통은 이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공안검찰의 부활이 걱정스러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태를 벗지 못한 공안의 부활은 공공의 안전이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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