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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호성 부속비서관 등 측근 3인방과 이원종 비서실장, 안종범 정책조정·우병우 민정·김재원 정무·김성우 홍보 수석을 교체하는 대통령 비서실 인사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각계의 인적 쇄신 요구에 신속히 부응하기 위해 인사를 단행했다고 청와대 측은 발표했다. 청와대 참모진을 우선 교체한 뒤 추후 개각 등 단계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인적 쇄신으로 시민을 설득한 뒤 예전처럼 국정을 이끌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민심이 떠난 줄도 모르고 아직도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참으로 딱하다.

지난 29일 저녁 시민 2만여명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금 민의는 인적 쇄신 정도가 아니라 박 대통령에게 국정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전 정권의 정치 스캔들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전에는 대통령의 아들이나 측근이 저지른 일이라 인적 쇄신으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게 명분 있는 수습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는 그런 수습안이 통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 자신이 국정문란의 장본인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극소수 측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몰랐으니 책임을 물을 대상이 박 대통령 자신 말고는 없다. 국정문란의 핵심이 그대로 있는데 청와대 보좌진과 내각을 아무리 갈아본들 어느 국민이 쇄신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더구나 박 대통령은 작금의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밤잠을 못 이루며 국정을 챙긴다는 대통령이 세 차례나 거짓으로 해명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압수수색까지 거부하니 무슨 일을 해도 시민이 믿기 어렵게 됐다. 사실을 밝히며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늑장대응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습 방안을 내놓는 대통령이 다시 국정의 중심축이 되겠다면 그것을 용납할 시민은 없다.

박 대통령은 이제 자신이 국정의 중심이라는 허튼 망상을 버려야 한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망쳐놓고도 무언가를 하겠다는 미련을 다 떨쳐 내야 한다. 즉각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어제 여야가 동의하고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책임총리 정도로는 사태를 마무리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더 버티면서 정국을 주도하려고 하면 혼란만 커진다. 이제 박 대통령이 할 일은 당장 내정이나 외치 등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고 이선으로 물러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는 물론 박 대통령 자신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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