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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감염자 발생 14일 만인 어제 청와대에서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매일 무서운 속도로 감염자와 격리대상자가 늘어나고, 2명의 사망자와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하고 나서야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책회의가 열린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초래한 정부의 무능, 청와대의 무책임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지자 뒤늦게 긴급점검회의란 것을 급조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첫번째 메르스 환자 확진 이후 2주 동안 감염자가 늘고, 두 분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 많은 국민이 불안해 한다. 더 이상 확산이 안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와서야 “안타까운 일”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에 얼마나 경각심과 진정성을 갖고 대처하는지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메르스 공포가 열흘 넘게 나라를 휩쓰는 동안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메르스가 국민 전체를 불안케 만드는 비상 상황으로 치닫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국무총리 대행이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긴급대책반을 만드는 등 뒷북을 쳤다. 어제는 학교 휴업 문제를 놓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충돌했다. 교육부가 “예방 차원에서 휴교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복지부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현재 학부모들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인 학교 휴업 문제조차 정돈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가 정상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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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갖기 위해 시청 브리핑실로 입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메르스 사태는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고 총력전을 펼쳐야 할 국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다. 하지만 그간 메르스 대처에서 박 대통령의 지도력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 보건 역량의 총동원’을 지시한 걸로 할 일을 다했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평상시 잡아 놓은 일정을 소화했다. 국가적 위기는 뒷전으로 미룬 채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기간 동안 골몰한 것은 오로지 ‘국회법 싸움’이다. 급기야 새누리당 지도부가 어제 메르스 사태를 다루기 위한 당·정·청 회의를 제안하자, 청와대는 “도움이 안된다”며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청와대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메르스 사태보다 국회법 개정안이 더 중대한 일로 생각한 모양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가 이러니 “세월호 참사 첫날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재난 사태 수습을 위해선 대통령의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자신의 위신이나 입지보다 국민의 안전에 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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