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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7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면에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쓴 ‘야당의 위기, 호남의 위기’라는 글을 보았다. 요지는 지난 4월29일에 있었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전패했는데, 그 패배에 책임질 사람은 당 대표인 문재인이 아니라 탈당해 출마한 호남 출신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문재인 대표의 책임을 추궁하고 비판하는 호남은 ‘실리주의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으며, 양식을 가진 호남인들의 일대 분발을 촉구한다’는 것이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몇 마디 지적한다. 우선 알려줄 사실은 지금 호남은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보궐선거 이전에는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민주정치의 위기’를 이번 선거를 통해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준이 정치인의 역할 수행 능력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광주의 지역정치는 위기가 아니라 더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희망의 호기를 맞고 있다.

야당의 위기에 대한 진단도 다를 수 있다. 중진 두 사람이 탈당해 출마한 사실에서 선거패배의 원인을 찾는 시각은 다소 대증요법적, 미국식 기능주의적 진단이다. 결과만을 집착하는 이러한 진단법은 병의 뿌리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 현상에 주목한다. 또한 숲보다는 나무만 보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구조주의적 진단을 권한다. 말하자면, 그동안 야당의 활동과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 정도, 두 사람이 탈당하게 된 사유와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대응자세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소수의견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2012년 말 대선 패배 직후에 야당 후보였던 그가 부정선거 의혹 자체를 덮어버리는 이상한(?) 정치행위를 보일 때부터 민주 시민은 의아해했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원 선거개입과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관련 경찰관이 양심선언을 하는 마당에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정치행위 자체가 야당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제1야당 대표의 순진하고 유약한 저항과 도전은 민주와 진보를 꿈꾸는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흔히 노무현 정치의 계승을 자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노무현의 정치력과 지도력은 이처럼 무력하고 무능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졌다. 서울,인천,성남에서 그리고 텃밭인 광주에서마저 졌다. 호남 사람들은 계속 찍어줘도 야당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앞으로 호남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출처 : 경향DB)


지금 호남이 실리주의의 유혹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지나친 표현이다. 실리주의란 이 시대 문명의 보편적인 추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사람들도 대체로 실리적이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호남에 살고 있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실리주의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고, 방향감각을 잃지도 않았음을 말해둔다. 만일에 일부 정치인만을 지목하고 한 말이라면, 그 대상이 정확하게 표현되어야 할 일이다.

이어서, 양식을 가진 호남인들의 일대 분발을 촉구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지역민을 당황하게 하는 표현이다. 누구나 쉽게 말하는 일상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한국 지역정치의 현실에서 볼 때 지역민의 정치행위를 폄훼하고 모독하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위의 논거에서 볼 때, 야당의 위기를 호남의 위기와 대응시키고, 더 나아가 호남인을 강박하는 표현은 무엄하다. 호남의 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정치 기적의 주역이 바로 이 지역민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한 일대 분발은 호남이 아니라, 극우반공, 친재벌정치경제의 본고장이 되어 버린 지역민과 정치인에게 요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교수의 글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알 수 있다. 염원하는 민주주의 발전의 꿈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이견을 제기하는 이유는 과도한 표현으로 인해 상처받은 호남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우리 지역의 현실을 그쪽에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김상곤 혁신위원장에게 거는 기대는 동일하다.


나간채 | 전남대 명예교수·광주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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