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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입법을 둘러싼 국회와 행정부 간 권한 논쟁이 매우 뜨겁다. 촉발된 계기가 무엇이건, 그 배후의 정치적 고려가 무엇이건, 어떻게 결말이 나건, 이번 문제는 우리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 설정을 재음미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이면서도 일도양단의 입장을 정하기 힘든 미묘한 부분들이 있다. ‘행정부의 전횡’과 ‘입법 독재’ 등 감정적이고 정파적인 말들을 잠시 접어두고, 민주주의, 삼권분립, 헌법의 정신 등에 대해 차분하게 반추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법률가들의 기술적 영역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더 나은 정치를 위한 필수적 논쟁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선, 정부 시행령을 국회가 심사하고 수정을 요구하겠다는 데 대한 행정부의 곤혹스러움을 이해한다. 레임덕을 둘러싼 정치권의 권력암투라는 시각은 제외하고서라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첫째, 효율성의 문제이다. 행정 과정의 세부적인 부분까지도 국회가 사후적으로 개입해 시행령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 때 일선 행정부서에서 느낄 당혹감은 매우 클 것이다. 요컨대, ‘원칙주의자’ 국회가 ‘현실주의자’ 행정부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이것은 악몽처럼 들린다.

두 번째 문제는 국회가 행정부에 비해 얼마나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이다. 전문화, 세분화된 행정부처의 인력을 생각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리 국회는 압도적 열세이다. 법률을 제정하기에도 인력과 자원이 부족해 정부나 심지어 민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고투하는 국회가, 법률보다도 더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행정입법까지 관리하겠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요컨대, 공룡 같은 행정부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면서 지나간 행정입법의 자리에 비해 국회가 너무 왜소하다.

세 번째, 사익과 대중 신뢰의 문제. 국회가, 그리고 정치가, 너무 인기 없다는 점이다. 국회에 대한 여론이 좋았던 적이 없지만, 부패사건들과 ‘특권’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가진다는 것이 대중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특히, 지역구민들에 대한 고려를 벗어날 수 없는 의원들이 ‘불편부당한’ 행정부가 가는 길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위임’이란 것에 대해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 우리 헌법을 보면 ‘국민-국회-(행)정부-법원’ 등의 순서로 조문이 구성돼 있고, 시민들의 직접적인 대의기관인 의회가 입법권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이다. 5공화국 때 행정부가 국회를 앞섰고, 유신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대통령-(행)정부-의회’의 순이었던 것을 본다면, 우리 국회의 헌법상 지위는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겨우 되찾아온 것이다. ‘정부’라는 말이 행정부와 동의어인 것처럼, 의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관료들이 만든 시행령이, 시민들로부터 직접 권력의 위임을 받은 기관에서 제정한 법률과 불일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행정부 독주시대의 유산이다. 시행령의 위법성은 사법부 판단 소관이라는 말 또한 너무 여유롭게 들린다. 시행령이 시행되고 누군가가 피해를 입고 구체적 소송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문제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통 끝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 등 핵심 쟁점에 합의한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후 인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회의 비효율성, 비전문성, 사익의 지배 등은 물론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그 정의상 일반인들을 대변하는 임시직이라는 점에서 못났고, 비효율적이고, 비전문적이며, 사익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임시직들에게 행정부의 프로페셔널들이 설명하고 설득하며 통제받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국회가 못났고 비효율적, 비전문적이며 사익의 지배를 받는 것은 우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삼권분립의 모델로 생각하는 미국의 경우, 의회가 독점적인 입법권을 가지며 가장 강력한 헌법적 권한이 부여돼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단지 효율성과 전문성이라는 실천적 문제로 인해 실질적이고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됐을 따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행정입법에 대한 의회제한(legislative veto)은 후버 대통령이, 보다 많은 행정입법권을 보장받기 위해 의회에 먼저 안전장치로 제안한 것이라는 점이다. 의회에 잠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행정입법 통제권한을 약속한 대신, 광범한 수준의 행정입법권을 넘겨받았던 것이다. 진정한 삼권분립은 삼부가 서로 경멸하며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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