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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주 귀국한 후 폭넓은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귀국 이튿날부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고향인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에 이어 그제는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을 견학했다. 어제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들렀고,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과 세월호 현장인 팽목항, 광주 5·18묘역을 방문한다. 자신이 제시한 대통합과 정치교체라는 과제 실천에 옹골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정치교체’ 슬로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와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심판받은 정치세력과 함께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또 반 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잘 안다.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그는 “잘 대처하시라”고 했다. 촛불시민의 뜻을 일관되게 무시하는, 직무정지된 대통령에게 한 덕담으로 적절치 않다. 보수층을 의식한 구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15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 선체를 둘러보며 군 관계자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말하는 대통합이 모두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라면 적이 실망스럽다. 시민을 분열시키는 비리와 부정의를 바로잡지 않는 한 대통합은 없다. 그게 빠진 대통합 구호는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원칙한 세 모으기와 대통합을 구분하지 못할 시민들이 아니다.

정치교체의 내용은 짐작할 수조차 없다. 국내 정치 경험이 없어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현실 진단과 해법의 방향 정도는 밝혀야 한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모순적인 말로 은근슬쩍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귀족 노동자’를 날 서게 비판했으면 거제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언급도 했어야 시민들이 수긍한다. 반 전 총장의 분명한 노선과 입장을 기대한다. 이것만이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대통령을 뽑으려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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