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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성 정치권의 편협한 이기주의에 실망했다”며 대선 레이스 하차를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 활동을 마치고 지난달 12일 금의환향한 뒤 20일 만에 현실정치의 벽 앞에서 좌절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첫 국제기구 수장이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유력 대선주자로 출발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의 모습만 보여주고 짧은 정치 역정을 접었다.

외교전문가 반기문의 실패는 시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성장하지 않은 정치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했다. 반 전 총장은 우선 정당정치를 간과했다. 유권자들의 요구를 수렴해 정당 간 타협과 경쟁을 통해 다듬은 뒤 입법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선거로 피드백하는 정치 과정 어느 것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어제 사퇴하면서도 “정치는 정치꾼이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정치 자체를 원망했다. 다른 분야에서 쌓은 식견으로 정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의 실패는 당연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 콘텐츠도 부실했다. 정치교체와 대통합을 외쳤지만 정치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결여돼 있었다. 충청지역 정서에 기대는 모습도 구태로 비쳤다. 비전 제시는 없이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을 정치로 잘못 이해했다. 반 전 총장은 검증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저 개인과 가족의 명예에 상처를 남겼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반 전 총장은 동생과 조카가 국제적 뇌물사건으로 기소됐음에도 모른다고만 했다. 검증을 회피한 채 인격 살인 운운한 것은 시민과 정치를 우습게 본 것이다.

보수세력과 잠재적 대선후보들은 반 전 총장의 실패에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새누리당으로부터 출마 요청을 받고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반 전 총장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출마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만에 하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 뒤 출마한다면 국정을 팽개친 데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정공백 상태에서 국가위기를 충실히 관리하는 것이 그의 당면 과업임을 알아야 한다. 반 전 총장의 20일은 정치가 단순히 국민적 인기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국가를 이끌 비전과 그것을 실현할 정당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각 정당과 대선주자들은 ‘반기문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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