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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참 어리석다’ 싶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이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럴까. 약 3년 전쯤만 해도 그 또한 대선 출마 권유에 손사래를 치며 “뭐가 아쉬워서”라고 했다고 하니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닌 듯싶다.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한국인의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를 본받고 싶은 모델이나 멘토, 심지어 위인으로 기록한 책만도 국내에서 수십권이 넘게 출간됐고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라 한다.
그런 반 전 총장이 요즘 평생 겪지 않았을 수모를 연일 겪고 있다. 귀국 후 그를 향한 시선은 온통 부정적인 뉴스들이다. 가십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항 지하철 발권과 외제 생수 고르기 같은 것은 해프닝이라 치자.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환영했던 그의 발언은 “나쁜 놈”들의 집요한 취재거리가 됐고, “일자리가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하라”는 발언에는 청년층의 야유가 뒤따르고 있다. 게다가 자신과 친·인척 비리 연루설까지 얽혀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의 고향에서는 반 전 총장의 이름을 딴 홍보물과 마라톤대회 명칭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고 한다.
만약 반 전 총장이 다른 길로 나아갔다면? 아마도 그는 전 국민의 환영에 둘러싸였을 것이다. 그의 인기와 명망에 기대 지지율을 높여보려는 대권후보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무능하고 존재감 없는 사무총장이라는 일부 외신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에는 그의 치적이 훨씬 큰 비중으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쏟아지는 국내외 강연 의뢰와 집필, 출판 요청은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을까? “돈이 없어 정당에 가입해야겠다”는 황당한 말이 왜 필요하겠는가.
차제에 ‘미끄럽다’는 뜻의 민망한 별명을 쇄신할 수도 있었을 듯싶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해 반 전 총장은 재임 기간 중 일관되게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전 세계가 편견에 맞서 싸우라”, “나는 성소수자 편에 선다”는 연설은 기념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역사적인 순간이다. 적극 환영한다”고 극찬했다. 그런 그가 대권 행보에 나서면서 “성소수자의 인권은 지지하는데 성소수자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별명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려 한 듯싶은데, 어법에 맞지 않는 해괴한 말이 되고 말았다. 이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듯이 동성애자의 성정체성 또한 타인이 지지하고 말고 할 게 아니다. 그간의 언행을 감안컨대 모르고 한 말은 아닐 것이고, 알고 했다면 그를 지도자로서 신뢰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반 전 총장은 예상되는 여론의 호평과 최고의 명예까지 내던지고 대선 출마의 길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을 불살라서라도 그걸로 갈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 헌신을 믿어보고 싶은데 의구심이 생긴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했다. 누리꾼들의 패러디처럼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순 어법이다. 평생 외교관 출신의 언사로 이해한다 해도 정치 지도자에게 기대되는 메시지로는 기회주의적이다. 정치 지도자는 분명한 정치 철학과 비전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나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가 보여준 언행은 속이 빈 공갈빵처럼 느껴진다. 쉴 새 없는 광폭 행보를 통해 전국 민심 탐방을 하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만 쌓여간다.
외교관 출신의 그가 탄핵 정국 이후, 격랑에 기우뚱거리는 대한민국호를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사실 그가 한국에 기여할 일은 대통령 말고 무수히 많다. 유엔은 안보, 발전, 인권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제기구다. 이 때문에 전직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평화와 인권, 전 지구적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울린다. 유엔 사무총장의 경륜에 걸맞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도 살릴 수 있는 독보적인 일이다. 정작 그가 몸을 불살라야 할 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으로 예측되는 동아시아의 정치적·군사적 불안정 속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의 업적으로 꼽히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또한 지구 생태계 안보를 위해 그의 헌신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뿐이랴. 성 평등과 성소수자 인권 향상, 급증하는 난민의 인권 보호 등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전직 유엔 사무총장에게 부여된 과업은 산적해있다.
우리도 원숙하게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욕심이 아니라 공익과 미래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선택을 해간다면 좋지 않을까. 반기문의 ‘다른 행보’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문경란 |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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