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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년간 유엔 수장으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어제 귀국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메시지를 통해 “부의 양극화,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수많은 지지 인파 속에서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된다”며 국가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포부와 각오도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무대를 누빈 한국인에게 시민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향후 5개월 안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짧은 기간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했지만 국내 정치에는 문외한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현안을 접하지 않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와 그 배경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것이다. 당장 그에게 이에 관한 해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반 전 총장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맞는 한국적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투표장에서까지 ‘깜깜이 선거’를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의 미래 비전과 이를 구현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반 전 총장의 인기는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막연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어제 부의 불평등과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을 헐뜯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게 권력의지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 신인으로서 기존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지만, 기성 정치 비판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구성원들간 분출하는 갈등을 조직하고 조정하고 또 해소하기 위해 타협과 설득, 협상을 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 민심을 수렴하고 선거를 매개로 책임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반 전 총장에게 현실 정치, 특히 정당 경험이 없는 것은 예사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난달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동교동, 상도동, 비박, 친박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정당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특정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뭉치자는 논의의 중심에 반 전 총장이 서 있다. 정당은 경시하면서 정당 간 연대를 통해 당선되겠다는 생각은 이율배반이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도 검증 대상이다. 이리저리 눈치만 본 역대 최악의 총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험담인지,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에는 왜 부응하지 못했는지 등을 냉정히 따져야 한다. 게다가 개인 비리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한 의혹은 물론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뇌물 공여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씨 의혹에) “왜 내 이름이 등장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한 유엔총회 결의에 대한 질문에도 “왜 명백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제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거부감을 표출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을 거치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시민들의 검증 욕구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을 정치공세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 경제와 민생, 안보 문제 등이 한꺼번에 겹친 총체적 위기에서 치러진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기간도 짧고 인수위원회 활동도 없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후보들의 비전과 철학, 정책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또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 함께할 정당은 물론 함께 집권할 통일된 정치 집단도, 집권 구상도 아직 없는 반 전 총장이 짧은 기간에 대통령 자격을 입증하는 일은 그 자신의 성공 여부를 떠나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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