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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과 의료개혁은 여러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우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 그리고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관계가 거의 흡사하다. 불공정한 재벌경제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경제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소규모 골목 상권을 침탈해서 빵, 맥주, 두부, 콩나물까지 팔고 있는 지경이다. 대형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10년 동안에 대형병원 수입에서 외래진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했다. 동네의원에서도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경증 외래환자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대형병원이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의 43개 대형병원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해서, 다른 의료기관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해도 더 높은 수가를 주는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형병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외래로 진료한 ‘의원역점질환’ 환자들이 무려 90만명에 이른다. 의원역점질환은 대형병원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정부가 지정한 감기, 배탈, 고혈압 등 52개 질환을 일컫는다. 대형병원더러 이런 일 하라고 특별대우를 해 준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한번 대형병원으로 간 환자는 동네의원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동네의원으로 되돌아 온 의원역점질환 대상 환자는 60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네의원의 경영 여건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에 이상한 짓을 해서, 사회적 질타를 받는 동네의원이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지난달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재벌총수들이 증인석에 대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재벌이라고 다 같은 재벌이 아니고, 대형병원이라고 다 같은 대형병원이 아니라는 사실도 공통점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30대 재벌의 총 자산에서 4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범 4대 재벌을 제외한 중견 재벌의 경우, 셋 중 하나는 부실상태라고 한다. 재벌도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다. 43개 상급종합병원 진료비 수입 합계에서 ‘빅5 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을 넘는다. 빅5 병원과 나머지 38개 대형병원의 병원별 진료비 수입 차이는 4배에 이른다. 예전에는 서울에 있는 병원 못지않게 잘나가던 지방의 유력 대형병원들이 동네병원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 혜택이 재벌과 대형병원에 쏠리는 것도 공통점이다. 대기업은 전 국민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지만, 전기료는 2조5000억원가량 덜 내고 있다.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도 편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총액의 80% 이상이 10대 재벌에 돌아가고 있다. 대형병원도 비슷하다. 대형병원은 모두 대학병원이다. 병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병원이나 의료법인병원과는 달리 대학병원은 상속세, 특별부가세, 양도소득세 등이 부과되지 않는다. 같은 소득을 올려도 개인병원은 대학병원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런 혜택을 주는 근거는 대학병원이 수행하는 공익적 활동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병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만큼 본연의 공익적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재벌개혁과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의 양가 감정도 공통점이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에는 대다수 국민이 동의한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하면,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가지고 있다. 재벌을 욕하면서도 재벌 기업의 제품을 찾고, 자식이 재벌 기업에 취직하면 동네잔치를 연다.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체계가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도 대다수 국민이 동의한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다보니 정작 위중한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진료비도 더 비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아프면 동네의원을 외면하고 한사코 대형병원을 찾는다. 의료 종사자들이 대형병원 취업을 선호하는 것도 비슷하다.

선진적인 의료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료체계를 개혁했다.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에 가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했고, 대형병원은 제 역할을 할 때 제대로 보상받는 체계를 만들었다. 물론 이런 의료개혁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짧게는 십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이 걸렸다.

재벌개혁이 우리 시대의 과제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재벌 적폐를 청산하지 않으면, 국민이 잘사는 경제를 이룰 수 없다는 절박성 때문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단번에 이룰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다가는 몇 걸음도 못 가서 주저앉게 될 공산이 크다. 선명한 선언이 재벌개혁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느 나라를 봐도, 재벌의 자발적 노력으로 개혁을 이룬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재벌개혁과 의료개혁의 마지막 중요한 공통점이다.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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