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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에게 지극히 불평등하다’는 ‘한국적 법언(法諺)’이 적용되는 영역 중의 하나가 바로 노사관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사소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혹독한 처벌을 받는 반면에 기업주는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원 폭행, 노조파괴 등 온갖 범죄에도 경미한 제재를 받거나 아예 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발생한 유성기업 사태도 이러한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자동차 엔진 부품 생산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는 당시 밤샘근무를 없애기 위한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을 놓고 사측과 협상을 벌이다가 결렬되자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사측은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원 테러, 해고, 직장폐쇄, 손해배상 가압류, 노조파괴 등으로 대응했다. 노조원들은 ‘밤에 잠 좀 자자’는 소박하고 절실한 요구를 내걸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7명이 구속되고 40여명이 해고됐으며, 12억원의 손배가압류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특히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범죄행위가 밝혀진 ‘노조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의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았는데도 검찰은 사측에 면죄부를 주었다. 범죄를 자문해준 자들은 처벌을 받았는데 정작 범죄를 의뢰하고 실행에 옮긴 사업주에게는 혐의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전국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유성기업, 만도 등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사건 재수사 및 기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경향DB)


법원이 금속노조 등이 낸 유성기업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가 엊그제 “사측의 노조 지배·개입 행위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공소제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재정신청은 고소인이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하도록 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절차로서 법원이 받아들이면 검사는 기소를 해야 한다. 요컨대 법원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사실상의 재수사를 명령한 셈이다.

우리는 법원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 검찰이 지난번의 과오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낸 뒤 사측의 범죄행위를 법정에 세우기를 촉구한다. 만에 하나 검찰이 이번에도 구부러진 잣대를 꺼내 사측을 교묘하게 비호하는 등의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그 과오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법원의 공소제기 결정이 전국의 사업장에 만연한 갖가지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노사간의 산업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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