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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붓는다. 바람 탓인지 추위 때문인지, 손가락이 굴뚝만큼 굵어진다. 엄동설한에 손 트는 것처럼 장갑 두 켤레가 툭툭 터져 나자빠졌다. 바늘귀에 머플러 실을 한 올 끼워 한땀한땀 진땀을 빼며 꿰맸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굴뚝 따라 흔들리던 마음이 비로소 중심을 잡는다. 체하면 손가락 따려고 들고 온 바늘에 서러움이 찔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찔리고 나니 7년간 체한 빨간 서러움이 차분하게 쓸려 내려간다. 놀린 손의 시간과 거부당한 손의 시간이 서로를 시침질한다. 쪼그려 앉은 다리가 저려오니 이것도 서럽다. 구름이 발끝까지 햇살을 막아서고 바람은 굴뚝 연기를 폐까지 배달한다. 이마저도 서럽긴 매한가지다. 물색없는 고드름은 덩치만 키우고 쌍용차 굴뚝엔 때 아닌 고드름 덕장이 한창이다.

스무날 하고 나흘째 굴뚝에 올라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반드시 끝을 보겠다는 결심이 흔들리는 굴뚝과 함께 출렁인다. 이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이겼다’는 말을 내뱉는 그 순간을 수천번 상상한다. 그러나 기쁘지 않다. 승부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만 우리는 운명의 거울 앞에서 외치고 있다. 패자도 우리요, 승자도 우리다. 진 쪽도 회사가 아니라 우리다. 이긴 쪽도 우리가 아닌 우리다. 해고자가 복직되고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낸다 한들 우리가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뭘 가지고 우리는 이겼다고 주장할 것인가.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는 그 순간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세월의 강 위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돌릴 수 없는 물길이다. 26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지난 7년간 그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앞에 없다. 남은 우리는 승자가 아니라 생존자일 뿐이다.

굴뚝 위에서 보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정반대일 때가 많다. 그러나 온몸을 감는 하얀 연기는 죽어간 26명의 동료가 되어 눈앞과 손과 피부에 매일 와 닿는다. 산 사람이 무형이고 죽은 자들이 유형인 것이다. 우리가 가치라 말하는 것들의 덧없음을 매일 느낀다. 살아 있다는 소중함도 어떤 경계를 지나쳐버린 그저 그런 부질없는 먼지일 뿐이다. 그렇게 생존해 있는 쌍용차 해고자가 굴뚝 위에도 굴뚝 아래에도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 자동차 만들게 될 그 손은 누구 손이며 어떤 손인가. 7년의 시간이 뜯겨 찢어져 버렸다. 영혼이 따뜻했던 시절이 깨끗하게 지워지고 덩그러니 벌판 위에 홀로 선 그들이 손에 쥐게 될 승리란 무엇인가. 서러움이 건더기째 떠다니고 가라앉지 못한 내 청춘의 비극은 공장 복직만으로 희극으로 변할까.

노동자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하다. 가슴팍 때리는 일 잦고 까치밥도 되지 못하는 몫을 두고 배분이란 이름의 배급소 앞 행렬이 길다. 멀쩡한 팔다리 뭉텅뭉텅 잘라내고도 양보는 발톱 밑 때보다 적다. 양보는 쓰러졌고 배분은 질식사했다. 해고는 칼춤을 추고 비정규직은 넓게 넓게 어깨 벌려 모두를 주저앉힌다. 바닥은 갈라지고 하늘은 깨진 얼음조각으로 정수리를 향해 햇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등을 뚫고 심장에 박혔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니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 매일 아침 살아 있는지 몸 흔들어보며 확인하는 서늘함 속, 하루살이 인생이 수두룩하다. 안녕하냐는 말의 온기를 가 닿지 않은 내일까지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 안부 묻고 돌아서는 뒷목 서늘한 얼음 냉기는 언제쯤 이 몸에서 빠져나갈까.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7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찾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전하는 ‘굴뚝신문’을 보고 있다. 굴뚝신문은 쌍용차 평택공장의 굴뚝 농성 소식을 담아 민주노총이 신문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출처 : 경향DB)


햇살 아래 고드름 세워 놓고 내일을 위한 시간을 녹여가고 있다. 이별을 위한 짐을 싸고 만남을 위한 면도를 한다. 이야기의 목차를 정하고 말의 순서를 매긴다. 밥 보따리 끌어올리며 내일을 깃고 낡은 줄에 매달려 출렁거리는 우리를 본다. 운명의 장난은 위험천만했고 달리는 차에 팔이 낀 채 끌려다닌 지난 시간이 두툼하다. 눈 찌르는 머리카락 싹둑 잘라내고 싶은 욕심이 욕망의 전부라는 초라함이 고드름처럼 바닥을 향해 길게 내려온다.

예전에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뭄바이였다. 8년 뒤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인수했다. 우리들의 해고와는 가느다란 상관관계만 있을 뿐 굵은 인과관계는 없다. 1월13일 출시되는 신차 ‘티볼리’를 위해 쌍용차는 전사적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와 같은 아주 작은 문제, 먼지처럼 가벼운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면 상관관계는 한겨울 고드름처럼 금세 굵어질 수밖에 없다. 공은 이제 마힌드라그룹 아난드 회장 발밑에 떨어졌다. 인도에서 맛본 짜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작게 소망한다. 인도인들이 매일 마시는 따뜻하고 하얀 짜이를 아난드 회장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이다. 따뜻한 짜이를 맛볼지 식어빠진 짜이를 들이켤지 매일 동치미 국물 마시며 생각한다. 오늘도 쌍용차 해고자들은 내일을 위한 시간 위에 앉아 있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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