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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근로개선책도 포함돼 있으나 대체로 비정규직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재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주요 내용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확대하고 파견 허용 업종을 늘린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쉬운 해고와 임금 깎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철폐라는 사회적 요구와는 정반대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한다. 정규직을 흔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인 데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조차 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꿔 말하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빌미 삼아 정규직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대책에는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가이드라인을 신설하고 성과위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방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노사불신이 심하고, ‘쪼개기 계약’ 등 왜곡된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정규직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 임금을 올려줄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권영순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남용 방지책도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공산이 더 크다. 비정규직 당사자가 원하면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용안정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계 전체 차원에서는 사탕발림일 뿐이다. 비정규직 고착화와 신규 직원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임금 숙련노동자의 돌려쓰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하려는 기업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파견 대상을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역효과가 우려된다.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책으로 제시한 정규직 미전환 이직수당 신설이나, 퇴직금 수령자격 시한을 1년에서 3개월로 줄인 것도 기업의 법 위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형태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정규직으로의 전환과 차별 해소다. 사용기간 연장과 허용 직종 확대, 몇몇 처우개선책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이번 대책은 노사정 논의를 위한 정부 측 제시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정의 이름을 빌려 정책 추진을 밀어붙일 것이란 의심을 받아왔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질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전환을 강력히 요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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