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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대국민 사과에서 ‘보좌진이 완비되기 이전에, 홍보와 연설 등의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조언을 구한 시기와 범위를 한정했다. 그러나 이는 수시간 만에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최씨가 외교·안보와 인사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것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시나리오에서부터 외교 사절 면담, 대통령 업무보고, 국무회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영역 구분이 없다. 어떤 폭로가 또 나올지 시민들이 걱정할 지경이다.

[장도리]2016년 10월 27일 (출처: 경향신문DB)

증언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을 과연 민주국가의 대통령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씨와 함께 일했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의 한 명인 정호성 부속비서관이 거의 매일 두께 30㎝ 분량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최씨 사무실로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 중 10%만 재단 업무였고,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 관련 사안이었다고 했다. 최씨가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국정현안을 논의한 뒤 청와대로 결과를 보내면 그 결과가 문서화되어 재단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모임에서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했으며 이런 일은 올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최씨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라는 증언까지 했다.

다른 보도에서는 최씨가 청와대 민정수석 등 인사 추천을 하고, 비밀 사항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를 한 달 전에 받아본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 밖에 또 다른 청와대가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쫓겨난 박관천 전 경정이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고 한 말은 한 귀로 흘릴 일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3차례에 걸쳐 해명했지만 다 거짓으로 판명됐다. 눈시울을 붉혀가며 사과하는 자리에서까지 거짓말한 대통령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스럽다. 진실을 밝혀도 민심을 돌리기에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대응은 안이하다.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브리핑에서 “문서 유출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지켜보자”며 별일 아닌 듯 말했다. 비선조직이 일상적으로 활동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고, 최씨 행위가 국정농단이냐고 반문한 관계자도 있었다고 한다. 국정 사령탑의 현실인식이 이런 수준이다. 이제 더 이상 박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신뢰를 잃은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 자격을 잃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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