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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부검영장 집행이 무산되었다. 처음부터 억지였다. 사건 현장과 병원에 도착한 직후 백남기 농민의 상태, 파기해서 없다던 경찰의 ‘상황속보’는 사인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말해준다. 그런데도 경찰은 ‘병사’로 왜곡된 사망진단서를 빌미로 끝내 부검영장을 받아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수압 15바’의 물대포 위력이 어떤지 보여주었다. 수박이 깨지고, 나무판이 뚫리고, 철판이 휘어진다. 살인적이다. 사인은 더욱 명확해졌다. 불필요한 부검의 포기가 순리고 상식이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도 경찰은 끝까지 영장을 집행하겠다며 유족을 위협했다.

“이미 승인을 했는데 시범적으로 해보자.” 지난 18일 환경부 장관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시범’은 ‘모범을 보인다’는 뜻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시범적으로 진행돼 왔을까? 사업 승인의 핵심 근거인 경제와 환경 관련 보고서는 모두 부실·조작으로 드러났다. 경제성 분석보고서 조작 혐의로 양양군청 공무원 2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양양군이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과 조작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평가서를 검토한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모두 사업 불가 의견을 냈다.

24일 서울 조계사 앞에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백남기 농민 부검에 반대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이어졌다. 연합뉴스

“국감에서 지적한 것 중에 팩트가 아닌 것들이 많다. 일일이 대응하면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안 맞을 것 같다.” 장관의 해명은 너무나 궁색하고 무책임하다. 시범적으로 “국가 정책을 추진”하려면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필수다. “팩트가 아닌 것”에는 오히려 “일일이 대응”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서 규정’에 따라 반려하고, 책임자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시범적으로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환경부 장관은 일단 승인이 되었으니 무조건 밀어붙이겠단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공권력과 국가 정책이란 이름으로 막가파식 행패가 횡행한다. 잘못을 덮으려는, 떳떳하지 못한 의도를 관철하려는 권력의 음습함이 피어난다. 그러나 빛은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는 법. 경찰이 부검을 하겠다고 억지와 행패를 부릴수록 국가폭력에 의한 ‘외인사’라는 진실과 폭력 경찰의 실체만 더 선명해진다. 환경부 장관이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방패로 설악산 케이블카를 밀어붙일수록 사업의 부실과 조작이라는 진실만 더욱 선명해진다.

진실을 가리려고, 사건을 더 큰 사건으로 덮어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 권력이다. 언제는 국정의 블랙홀이라며 일축했던 ‘개헌’을 자신에게 블랙홀이 필요하자 선뜻 꺼내든다. 그러나 결국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루카복음) 드디어 ‘최순실’의 진상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정이 사적으로 농단, 농락되고 있었다. 공권력이 사권력으로 전락했다.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는 공동선에 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권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거다.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다(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환경부 장관과 경찰의 막가파식 행패도 우연이 아니다.

강도떼가 되어버린 권력 앞에서 세상이 온전할 리 없다. 갖가지 권력형 비리,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위안부 밀실 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시도, 화상경마도박장, 핵발전소, 4대강 사업, 가리왕산 원시림 파괴. 어지럽지만, 재앙은 계속된다. 밥쌀 수입과 백남기 농민의 죽음, 케이블카 사업으로 위기에 내몰린 설악산의 산양을 비롯한 뭇 생명들. 정의 없이, 이 땅에 평화는 없다.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현 국면을 덮을 또 다른 블랙홀을 찾아서는 안된다. 거짓으로 가득한 권력의 폭주를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는 것은 파국밖에 없다. 어제는 바로 10·26이었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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