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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군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기습 배치했다. 어제 새벽 경북 성주골프장에 사격통제레이더와 발사대 6기, 요격미사일 등 핵심 장비 상당수를 반입했다. 국방부는 “가용한 사드의 일부 전력을 배치해 우선적으로 작전운용 능력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한 대낮을 놔두고 한밤중에 도둑 배치한 이유로 충분치 않다. 북한이 당장 핵미사일 공격을 할 것이란 징후도 없는데 서둘러 배치한 의도가 궁금하다. 특히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선거 쟁점인 사드 배치를 강행한 저의가 뭔지 묻고 싶다. 대선판에 뛰어들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사드 배치는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든 되돌릴 수 없도록 ‘알박기’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미묘한 배치 시점을 감안하면 알박기 차원을 넘어서 대선판을 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난 시점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불과 1주일 전 대선 후 사드 배치를 시사한 이후 뚜렷한 이유 없이 배치를 앞당긴 것도 이해가 안된다. 사드에 미온적인 문 후보를 견제하고, 사드를 찬성하는 다른 후보들을 지원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군은 해명해야 할 것이다.

26일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성주골프장 부지에 포문을 하늘을 향해 조준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가 배치돼 있다. 한미 당국은 이날 새벽 사드 핵심장비인 X-밴드 레이더와 차량형 발사대, 요격미사일 등을 골프장으로 전격 반입했다. 매일신문 제공

미국 군 당국이 한국 대선 와중에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은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한국을 무시하는 미국 지도자들의 언행이 잦아지는 것을 가볍게 봐선 안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일본은 핵심 동맹국, 한국은 파트너’ 발언이 대표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 발언을 전하는 트럼프의 언행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사드 배치 강행 자체가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 역시 대선 주요 이슈이기 때문이다.

사드는 군사적 실효성 논란과 중국 보복의 문제 외에 시민의 의사 묵살과 절차상 불법으로도 배치 명분이 없다. 정부는 사전 상의 없이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발표했으며, 반대 시민과 대화하기는커녕 물리력으로 밀어붙였다. 어제도 경찰이 반대 주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고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기본설계가 나온 뒤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는 게 군당국의 계획이지만 사후적 환경영향평가마저 제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다. 사드 부지에 대한 주한미군 무상공여 문제는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제대로 법을 지킨 게 없다. 사드는 불법 위에 쌓아올린 모래성에 다름 아니다.

불법적 사드 기습 배치를 누가, 왜 강행했는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대선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도 밝혀야 한다. 진실을 찾아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른 사람 아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일이다. 주권국가로서 미국에도 강력한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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