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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수용 불가 입장을 못 박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며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이 그대로 정부로 이송돼 올 경우 거부권 행사를 불사하겠다며 대놓고 국회를 겁박한 셈이다.

대통령이 문제 삼는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가 만든 시행령이 본 법률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가 정부에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의 취지와 내용,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행정부의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교정 장치를 강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행정입법이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남용됨으로써 국회의 입법권을 위협해온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모법(母法)의 취지와 정신을 위반하는 ‘법령의 하극상’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엄격한 통제권을 두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삼권분립 위배”라고 하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흔드는 정부의 행정입법 남용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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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내'국회법 개정'관련 발언 (출처 : 경향DB)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법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청와대가 내세우는 ‘위헌’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했지만 이것으로 행정입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수정·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제재할 수단도 없다. 정부가 고유 권한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권한쟁의심판 등 사법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 개정 국회법이 사법부의 ‘행정입법 위헌·위법 심판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고 볼 근거가 약하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정부의 모든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일일이 간섭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자체가 그야말로 ‘괴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국정 마비” “정부 무기력화” 등 자극적 표현을 동원하고 거부권 행사를 시위하는 까닭을 모르는 바 아니다. 국회의 입법권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일탈된 행정입법 권한을 내놓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니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대다수를 포함해 재적 의원 3분의 2가 넘는 211명이 찬성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을 기어코 막겠다고, 국회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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