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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치판이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어제 열린 예산 당정회의에서 이같이 주장한 뒤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대선 후보가 출마 선언 때 한 얘기를 두고 원내대표가 ‘정체불명’이라는 단어까지 쓴 것은 상식 이하”라고 공박했다. 대선을 불과 100여일 앞둔 여당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믿기 어렵다.


시계 보는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종인 위원장 (경향신문 DB)


두 사람의 엇박자는 박근혜 후보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 김 위원장은 대선 공약을 성안하는 정책총괄자이고, 이 원내대표는 각종 공약을 입법으로 실천해야 하는 원내사령탑이다. 국민들은 같은 사안에 대한 두 사람의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대표적 경제민주화론자와 시장경제론자 간 이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간극이 너무 크다. 그러잖아도 여당 안팎에선 당내 보수파 의원들이 몇몇 재벌 기업들로부터 경제민주화 논의를 저지해달라는 로비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터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꺼낸 게 언제인데 아직껏 ‘정체불명’이란 언명이 나오니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경제민주화 논쟁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결론 도출을 위한 갈등이라면 오히려 장려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두 사람이 충돌한 이면에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당내 세력 사이의 근본적 노선 투쟁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원내대표가 최일선에서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대리전을 치르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그것이다. 조직적 반대 움직임도 없지 않다. 지난 7월 두 사람의 1차 충돌 때와 달리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등이 경제민주화 논의에 제동을 걸려는 듯한 흔적이 감지된다.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정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두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화두만 던져놓고 각론을 구체화하지 못한 박 후보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박 후보는 이날 “신뢰의 정치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어 되는 게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원칙은 경제민주화 공약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에 관한 한 여전히 원론에 머물고 있다. 이날도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당내 갈등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자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직 내부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실토로 들린다. 길게 끌 일이 아니다. 대선 후보가 출정식과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약속한 사안을 원내대표가 뒤집는 현실을 방치하면서 신뢰의 정치를 말할 수 없다. ‘신뢰’는 ‘원칙’과 더불어 박 후보를 대변하는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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