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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내곡동 특검법’이 엊그제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대 국회 개원의 조건으로 특검 도입에 찬성했던 새누리당 내 일부 ‘친이 인사’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는 전례 없는 표결까지 거쳐야 했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공간으로 물색했던 서울 내곡동의 사저 부지를 불법 매입한 의혹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진위는 수사 결과 드러나겠지만 현직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이 서글프다.
내곡동 특검은 그 자체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현역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 형사 소추의 대상이 아니지만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 대통령이 가족들을 조사하는 특검을 임명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금까지 9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처음으로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행사하는 진기록도 갖게 됐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도 임기 중 심각한 비리 의혹이 있으면 예외없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세우게 됐다’는 민주통합당의 자평처럼 이번 특검법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곡동 사저 특검 대화하는 여야 법사위 간사 (출처: 경향DB)
이제 관심은 특검이 파헤칠 수사의 영역이다. 특검법은 일단 수사 대상을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과 관련된 배임,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법 위반 의혹, 수사 과정에서 의혹과 관련돼 인지된 사항 등으로 명시했다.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한다면 이 대통령 일가 전체를 겨냥할 여지도 있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특검 거부권 행사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침을 밝히지 않은 채 법안이 넘어온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서 이를 의식한 불편한 심기가 읽힌다. 한때 여권 일각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저도 포함시키자는 억지 주장이 나왔다가 수그러든 건 다행이다.
특검의 성패는 해당 주체들의 협조와 대처에 달렸다. 민주당은 누가 봐도 신망이 있는 인사를 추천함으로써 추천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도 거부권 행사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옳다. 친이 인사들은 고발자가 특검을 추천하는 것은 위헌이라지만 수사 대상이 수사권자를 고르겠다거나 수사를 안 받겠다고 버티려는 발상은 위헌론을 능가하는 코미디다. 혹여 청와대가 이번 특검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도 받으려 든다면 그것은 두 번 죽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 이상 떳떳한 해명의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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