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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선 후보들의 관심사와 발언에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안보, 외교 현안 특히 대북 문제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고뇌나 심도있는 견해와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모두 국내 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느낌이다.
정치를 공적 문제에 관한 집단결정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을 주도·관리하는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에서는 개별 현안보다 리더십의 전반적인 성격과 방향을 중시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다한때 “한국정치는 국제정치”라는 말이 있었다. 첨예한 냉전의 국제정치질서하에서 분단된 약소국 대한민국의 정치가 미국의 강력한 자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지적한 말이었다. 이제 국제적 차원의 냉전은 해체되었고, 한국은 지구촌의 당당한 G20 국가다. 문제는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경우 모두 나름대로 제국적 위상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현재 격화되고 있는 역내 국가들 간의 영토·영해 분쟁이나, 그나마 스스로 일부 시인했던 침략의 역사까지 뒤집어 부정하려는 일본의 행태 등을 놓고 볼 때 동북아는 우범지대라는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발언이 새삼 떠오른다.
패권 이동기는 흔히 전쟁을 수반하거나 상대적 약자를 희생시켰다는 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19세기 말 세계적 패권국가 영국이 극동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영·일 동맹을 맺음에 따라 지역 패권이 일본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망국의 쓰라린 체험을 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소 간 패권경쟁 속에서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에 이어 혹독한 냉전을 겪어야 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국제정치질서가 재편되는 중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중 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 하위 층위의 여러 갈등도 예각화되고 있다. 최근만 해도 중·일 간 영토분쟁이 고조되었고, 한·일 간에도 독도 문제를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는 등 가히 ‘동아시아 신냉전 시대’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김정은 시대를 맞은 북한의 향후 진로가 맞물리면서 한반도에서는 향후 5년 사이에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대통령은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외교역량과 한반도 관리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국제정세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대외정책에서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치국경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념적 선입관을 버리고 객관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아울러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발전이라는 관점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 정치가 구태의연한 보수, 진보의 고식적인 진영논리의 연장선에서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를 흑백논리로 재단하려는 경향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정치의 국내정치화’ 현상이 우려되는 것이다. 구한말이나 해방정국에서 그토록 쓰라린 체험을 했건만 역사로부터 여전히 배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경향신문DB)
현재의 대선 후보들에게 과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도 될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정치지도자 리스크’ 즉 최고지도자가 오히려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현상은 경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거대한 역사의 분수령을 맞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대선 후보들은 외교 안보 문제에 관한 정책 구상을 분명히 내놓아야 한다.
국민들 역시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는 ‘안’도 중요하지만 ‘밖’ 즉 국제환경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대처방향이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라는 생각을 갖고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철저히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이번에 또다시 후보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지연, 이념, 정파 혹은 피상적 이미지에 휩쓸려 묻지마 선거를 한다면, 민족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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