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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야멸차고 무책임한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5개월이 된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유족들의 간절한 호소를 전면 거부했다. 진상조사위 수사권·기소권 부여에 대해서는 “대통령으로서 할 수도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랐다. 삼권분립과 사법체계를 이유로 댔으나 독단적 주장일 뿐이다. 특별법이란 말 그대로 특수한 사안을 특별히 취급하려 만드는 법이다. 입법권자인 국회가 법률로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할 수 있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통치 차원의 결단을 호소했더니, 외려 박 대통령은 ‘절대 불가’의 지침을 설정해 국회 협의를 차단한 꼴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여야의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라고 못박았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새누리당의 체질상 꼼짝달싹 못할 게 뻔하다.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아예 무산시킬 작정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의 간절한 면담 요청도 “그동안 진도에서 팽목항에서, 청와대에서 유족들과 만나 그분들의 애로와 어려움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상 거절했다. 단식과 노숙을 해가며 유족들이 애타게 대통령과의 면담을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의 약속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초기 현장 방문과 유족 면담으로 “할 일 다했다”고 뻗대는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_ 연합뉴스


세월호 유족들의 호소와 비원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해온 박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발언은 국정 최고책임자의 언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하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야만적 언행을 일삼는 극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도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왜 생때같은 아들딸이 무참히 수장돼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유족을 ‘순수’와 ‘불순’으로 나누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 ‘행동’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외부세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쯤으로 모독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고 강변했다.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취지는 명확하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외부 세력’ ‘대통령 모독’ 운운하며 유족들의 요구를 불온시하고 진영 논리로 국민을 분열시키며 ‘세월호 탈출’만을 도모하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눈물을 흘리며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 그 약속은 어디에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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