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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인명만 앗아간 게 아니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능함과 안이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바닷물 아래로 밀어넣었다. 또한 정확하고 신속한 재난정보를 제공하고, 국가의 직무유기를 고발해야 할 언론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속보경쟁이란 미명 아래 오보와 자극적인 보도를 마구잡이로 쏟아냈고, 국가의 허물을 은폐·비호했으며, 사고 이후에는 유족들의 피맺힌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취재기자들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욕을 먹고, 언론 전체가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5개 언론 단체들이 어제 ‘언론계 공동 재난보도준칙’을 제정·선포하고, 경향신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준칙의 실천을 사고(社告)를 통해 다짐한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언론으로서는 참사 보도 과정에서의 참담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고해성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준칙의 선포를 계기로 언론의 재난보도 취재 방식이 크게 개선되고, 결과적으로 독자와 국민들의 전폭적 신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 언론단체 대표들이 16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실에서 재난보도준칙 선포식을 가졌다. (출처 : 경향DB)


우리가 이번 준칙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기막힌 현실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절박하게 요구하는 유족들에게는 온갖 모욕이 가해지고 있고, 눈물까지 보이며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던 대통령은 이제와서 말을 바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준칙은 언론이 보도제작을 통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독려하는 장전(章典)이 되어야 한다. 경향신문은 참사가 발생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난보도의 규범과 언론의 정도를 지키기 위해 그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유족·피해자들과 아픔을 같이 했는지, 독자대중들이 절실하게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고 보도제작에 임했는지 자문해 볼 때 부족함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번 준칙 제정을 계기로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유족들의 비원(悲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번 독자와 국민들께 약속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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