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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이다. 먼 나라 시인의 수사(修辭)가 아니다.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돈봉투를 들이민다. 돈 때문에 일어난 참사를 돈으로 마무리짓겠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간절한 비원은 따로 있는데, 애써 눈감고 귀 막는다. 치졸하고 몰염치하기 이를 데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이 땅이 슬프고 부끄럽다.

세월호 참사 1주기(16일)를 보름 앞두고 정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보상 기준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배·보상금 총액을 제시하면서 이례적으로 여행자보험 지급액까지 포함시킨 점이다. 어떻게든 액수를 부풀리려는 의도가 비친다. 세월호 가족들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여론을 잠재우고, 유족들이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농성하는 것처럼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와 가족을 돈으로 능욕한 정부는 배·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회견이 끝난 뒤 가족 50여명은 눈물을 흘리며 삭발했다. 이들의 분노는 지극히 정당하다.

4·16가족협의회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식을 갖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희생자와 피해가족을 돈으로 능욕했다"며 규탄하고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과 정부 시행령안 폐기,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출처 : 경향DB)


정부의 행태는 어쩌면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이번과 유사한 행태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해왔다. 세월호 가족과 돈 문제를 연계시켜 사안의 본질을 희석하고 시민의 시선을 지엽말단으로 돌리려는 시도 말이다. 유족을 ‘선량한 일반 국민’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타자화’ 전략에 다름 아니다. 최근에도 집권여당 실세 의원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위)를 “세금 도둑”으로 몰아붙인 사례가 있다. 세월호특위는 이 발언 이후 첫발도 떼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다. ‘물타기’가 먹히는 것도 하루 이틀일 터이다. 눈 밝은 시민들은 이제 속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에 찬성하는 비율이 꾸준히 60%를 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세월호 유가족 13인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단원고생 신승희양 어머니 전민주씨는 말한다. “승희 아빠가 가슴이 너무 아파서 누가 때려줬으면 좋겠다며 울더라고요.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가슴이 짓눌려서 죽을 것 같다고….” 억만금을 준다 한들 이들의 슬픔이 달래지겠는가, 고통이 가라앉겠는가. 혈육의 목숨과 돈을 맞바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부는 부도덕한 물타기 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더 이상 수치스럽게 만들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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