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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말을 꺼내기조차 너무나 힘들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들은 고혈압, 소화불량,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 9인 중 한 사람인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청력 상실에다 이명, 신경근종까지 앓고 있다. 너무 아프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치유센터(온마음센터)가 유족 152명을 조사해 질환별 분포를 발표했다(중복 답변 포함). 유족들은 소화기질환 64.5%, 근골격질환 52.6%, 치과 질환 41.4%, 만성두통 40.1%, 피부질환 29.6%, 고혈압 22.4% 등 스트레스성 신체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딸을 잃은 뒤 생리가 끊겼다는 어머니도 있다. 온전히 몸을 지탱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럼에도 어떤 유족들은 “난 치료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힘겨운 신체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치료받지 않는 이유를 보면 ‘가족을 잃은 상태에서 나의 건강은 의미가 없다’ 46.5%, ‘죄책감 때문에’ 25.5%, ‘무기력해서’ 17.8%,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10.1%, ‘치료비가 없어서’ 0.8%, ‘기타’ 2.3%이다. 차라리 ‘가슴에 빨간 약이라도 바르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냥 개인적 심리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증이다.
많은 유족들은 지난 1년 동안 안산과 진도 팽목항 분향소 두 곳, 광화문광장, 거리, 법원, 원래 살던 집까지 여섯 군데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병이 날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대는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들을 때, 병은 더욱 도지고 만다. 절대 못 고칠 것만 같은 세월호병이다.
갑자기 닥쳐온 가족과의 사별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 고통을 수반한다. 이 엄청난 개인적 시련을 이겨내는데 통곡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예부터 곡소리라도 내며 슬픔을 달래고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사정이 너무나 다르다. 유족들의 피눈물을 닦아줘야 할 국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여곡절 끝에 진상조사특별법은 제정되었으나 조사특위는 현판식도 못하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무심한 공무원들은 1년이 다 되어서야 피해 배상금을 정하고,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각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진상조사가 착수조차 안되어 있는 불비 상태인데도 유족들을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의심을 받을 만한 게 아닌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정부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번 대통령의 세월호 인양 발언은 그 동안 힘들었던 유족들을 되살리게 할 중요한 계제이다. 한동안 불통으로 일관하며 무심할 뿐이었던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는 어떤 명약보다도 효과적이다. 정부는 기술적 요소를 검토한다느니, 국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등 핑계를 대지 말고, 세월호 인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 활동을 신속·정확·공정하게 수행하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 이미 정부가 제출한 기존의 대통령령 원안을 즉각 철회, 폐기하고 조사위원들이 작성한 시행령(안)을 의결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 대통령(안)에 적시된 조사실무 조직을 장악하려는 공무원들의 방해와 은폐 음모를 스스로 포기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일부 국민들과 공무원들은 4월만 지나가고,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을 중시하지 않는, 영혼없는 공무원들의 뇌리에는 세월호의 비극과 고통, 진실이 망각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기획조정업무를 내세워 진상규명의 지연, 기피, 왜곡하려는 음모에 가담하는 공무원들은 이런 망각의 유혹을 저버리기 어렵다. 이걸 넘어서야만 진실과 정의를 건져내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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