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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그제 국정감사에서 어린이집 보육료 문제를 언급하면서 “무상급식 예산 5000억원을 재고해달라고 시·도교육감들에게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상급식 예산에서 5000억원을 빼내 영·유아 무상보육료로 충당하라는 얘기다. 아랫돌 빼내 윗돌 괴자는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무상급식과 어린이집 무상보육은 교육 복지의 중요한 두 축이다. 어느 한 제도의 시행을 위해 다른 제도를 양보하거나 흠집 내선 안될 일이다. 황 장관의 발언은 대통령 공약을 위해 이미 시행 중인 교육청 정책을 포기하라는 것이어서 일종의 ‘갑질’처럼 들린다. 복지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와도 맞지 않는다.

어린이집 무상보육 제도는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 경제활동 참여 확대라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다. 소요 재원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 시·도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는 정부의 애초 주장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정부가 빌미로 내건 재정 부족은 부자감세 등으로 세수가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무상급식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어린이집 무상보육이 중앙정부 책임이라는 것은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보낸 2015년 예산요구서에 국고로 누리과정 예산 2조1500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황 장관도 그제 국감장에서 그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고 앞뒤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정부가 갑자기 무상급식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 논란을 희석하고, 무상급식 제도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엿보이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그간 틈만 나면 무상급식 제도를 공격했다. 전면 무상급식은 예산낭비이며 정책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일 뿐이라는 것이다. 황 장관이 거론한 5000억원은 마침 정부·여당이 폐지하자고 주장해온, 중산층 이상 학생들의 무상급식비와 같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 무상급식에서 가난한 가정 학생만 대상으로 하는 선별급식으로 가자는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무상급식은 수많은 논란을 거쳐 일선 교육현장에 뿌리내린 제도다. 이제 와서 제도를 폐지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축적한 사회적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무상급식과 지방자치를 흔든다고 영·유아 무상보육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 정부가 무상급식을 손볼려고 했다면 실수하는 것이다. 시·도교육감들은 물론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주체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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