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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재량근로제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일본 경제침략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신규화학물질의 인허가 기간을 대폭 줄여주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을 연기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하나같이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과 시도들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윤상현 위원장이 22일 전체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 채택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일본의 도발을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한번 더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사회안전망과 노동자의 기본권을 흔드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은 ‘하책’임을 알아야 한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노력은 ‘탈일본’은 물론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추진했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개발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불과 얼마 전 강화했던 화학물질관리법의 안전 기준 등을 도로 후퇴시킨다면 게도 구럭도 잃는 수가 있다. 화학물질사고는 2012년 구미공단 불산누출사고나 가습기살균제 비극에서 드러나듯 일단 발생하면 재앙에 버금가는 피해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아온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정부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 목표·내용·기한 등을 ‘지시’할 수 있도록 ‘틈’을 열어줬다. 이로 인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재량근로’라는 근본 취지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고통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더 크다. 탄력근로제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 효과 역시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 유예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추진하는 현실은 여당조차 사안의 경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정부와 기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더라도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노동자의 권리 침해도 노동자 다수가 납득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허용 등 공정경제를 훼손하는 정책 추진도 마찬가지다. 자칫 눈앞의 불을 끄려다 큰불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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