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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그제 밤부터 포털사이트에는 흥미로운 검색어가 떴다. ‘차두리 고마워’였다. 누리꾼들이 호주와의 결승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차두리 선수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자”면서 자발적인 검색어 운동을 벌인 것이다. 어제 저녁까지 ‘차두리 고마워’ 검색어에는 200만 이상의 클릭이 기록됐다. 연장전에서 실수한 김진수 선수에게는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나왔다. ‘모든 선수들에게 꽃을 던지자’는 상찬의 릴레이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기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안컵에서 55년 만의 우승을 노렸기에 준우승의 ‘결과’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은 대표팀이 보여준 ‘좋은 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 축구는 그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이후 대표 선수들은 한국 축구의 전통인 투지마저 잃었다. 인맥과 학맥 등에 의한 선수 선발의 폐해도 되살아났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과 본선의 과정 및 결과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14년간 A매치 75경기 뛴 ‘차미네이터’ 차두리가 지난달 31일 호주 시드니의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15 아시안컵 결승전이 끝난 뒤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_ 연합뉴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절망과 무기력’은 ‘희망과 활력’으로 탈바꿈했다. 차두리 선수의 70m 질주가 상징하듯 꽉 막혀 있던 팬들의 마음이 단번에 뚫린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2년 히딩크 이후 잊혀졌던 ‘탕평의 축구’를 일깨워줬다. 이름값에 휘둘리지 않고 2부 리그 선수였던 이정협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과감히 발탁했다. 대회 초반부터 이청용·구자철의 부상 철수와 다른 주전들의 잇단 몸살로 위기감이 고조됐지만 남은 선수 전원을 고루 활용하면서 임기응변의 세밀한 전술로 위기를 뚫었다.

팬들은 바로 ‘모래알’이 아니라 ‘하나의 팀(One team)’으로 거듭난 대표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물론 “아직 노력할 게 많다”는 슈틸리케의 말처럼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수비진의 실수가 너무 잦고, 점유율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경기마다 기복도 심하다. 대표팀의 근간이어야 할 K리그는 침체에 빠져 있다. 중국 축구의 성장에서 보듯 아시아의 축구 수준도 평준화됐다. 방심했다가는 올 6월부터 열릴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은 모두가 함께할 때 결실을 맺는다’고 했다. ‘모두’란 대표팀과 축구협회와 팬들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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