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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 년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투수 짐 부튼은 자서전에서 “투수들은 20승이 보장된다면 생명을 5년 단축시키는 약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는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을 대상으로 “약을 복용하면 금메달을 따지만 7년 후에 반드시 사망한다 해도 약을 복용하겠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무려 80%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두 사례는 국제 스포츠계가 주요 대회 기간뿐 아니라 ‘불시에’ 선수들의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에 불거진 한국 수영의 간판 박태환 선수의 약물 파문을 지켜보면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나타난다. 박 선수의 경우 지난해 9월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불시 도핑 테스트 결과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됐다고 한다. 스테로이드 계열의 근육강화제인 이 성분은 세계반도핑기구가 지정한 대표적인 금지약물이다. 순간 폭발력이 필요한 운동선수에게는 ‘약물의 꽃’으로 통한다. 박 선수 측은 약물을 투여한 병원 측을 검찰에 고소했고, 병원 측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시 감시 대상’으로 분류돼온 ‘세계적인 선수’가 이토록 약물관리에 소홀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선수를 제대로 돌봐야 하는 에이전트와 대한수영연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병원 측의 해명도 검증해봐야 하는 만큼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문제는 일단 금지약물 성분이 적발된 이상 박 선수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세계반도핑규정이 ‘예방의 모든 책임은 선수가 져야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2~4년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고,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딴 메달 6개도 박탈될 수 있다. 물론 검찰 수사도 지켜봐야 하고, 2월27일로 예정된 세계수영연맹 청문회도 남아 있는 만큼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차제에 국내 스포츠계가 다시금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금지약물에 대한 감시는 갈수록 철저해지는데 선수들의 안일한 대처와 불감증이 화를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불시 도핑 테스트’를 위한 일정관리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징계처리됐다가 겨우 취소 결정을 받은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의 예가 있다. 보양식이나 한약을 잘못 복용해서 적발되는 어이없는 사례도 있다. 1990년 이후 역도·육상·체조·프로야구 등 체육계 전반에서 금지약물 복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포츠의 모든 성적은 약물이 아니라 땀의 결실이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새겨야겠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23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수영 자유형 400m 결승 시상식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출처 :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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