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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에는 두 달 가까이 경주 왕릉 전체를 돌아봤고, 2017년 봄에도 경주의 들판이나 산을 가리지 않고 서 있는 석탑을 찾아다녔다. 그러고 2018년 가을에는 경주 남산을 골골샅샅 오르내렸다. 난분분 벚꽃이 흩날릴 때면 끝이 날까. 올해도 2월부터 경주에 널린 폐사지(廢寺址), 곧 절이 있다가 허물어져 버린 절터를 찾아다니고 있다.

절터들도 대개 대여섯 차례씩 머물렀던 곳들이며 수십 차례나 드나든 곳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뻔질나게 경주에 드나든 지 35년,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경주는 여전히 나를 매료시키고 또 흥분시키며 놀라게 만드는 경이로운 도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흥분과 놀라움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과거에는 환희에 찬 놀라움이었지만 21세기가 되면서부터는 앞에 말한 놀라움과는 결이 다른 당황스러운 적이 더 많았으며 올해는 많은 곳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6년 봄이었다. 벚꽃이 질 때쯤이면 찾아가던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을 그 해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암자를 지나 고개를 드는 순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사각형 바위의 네 면에 각각 아름다운 불국토를 표현한 마애조상군의 북쪽 면 앞에 있던 벚나무가 없어져 버린 때문이다. 유독 꽃 질 무렵에 그곳에 갔던 까닭은 키 큰 벚나무의 꽃잎이 천개(天蓋)를 쓴 부처가 새겨진 바위를 어루만지며 나풀나풀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더구나 이른 아침이면 맑은 볕을 머금은 꽃잎은 투명하게 빛을 발하였으니 서로 다른 종교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감동적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맘때 나는 나라 안 마애불 답사를 얼추 마친 후였다. 그럼에도 굳이 그곳을 찾았던 까닭은 봄마다 유독 아름다운 헌화공양을 받는 마애불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탑골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장면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나무는 이미 잘려 나가고 없었다. 망연자실이었다. 유적이란 그것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주위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빛나는 경우가 많다. 마애불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마애불은 움직일 수 없는 붙박이인 부동산이어서 주위의 자연환경 덕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나무건 허공이건 서로 어우러져야만 더욱 빛나는 것이다. 물론 관리의 어려움을 말할 수는 있다. 나무로 인하여 생기는 그늘 때문에 바위에 이끼가 쉬이 자란다든지 하는 등의 이유로 잘랐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했는지 되묻고 싶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의 경우도 달라졌다. 겨우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한 울타리를 쳤을 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라의 아름다움은 디테일이 엄격하다. 그곳은 토함산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려고 바위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붉은 동살을 머금은 보살상을 바라보려 컴컴한 어둠도 마다않고 올랐던 곳이다. 새벽놀이 짙은 미명에 보살상 앞에 앉아 바라보던 중중무진의 허공은 천변만화하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 곧, 신선암 마애보살상의 아름다움은 보살상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허공에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 그의 아래에 앉아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가부좌를 하면 머릿속 묵은 먼지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그 자리에 다시 앉았더니 눈앞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이렇듯 경주의 아름다움은 나무 한 그루나 말뚝 하나로도 달라질 만큼 섬세하다. 그런데 올해 경주를 쏘다니며 몇 차례나 되뇐 말은 ‘아!’라는 탄식조의 감탄사와 ‘굳이’ ‘구태여’ ‘왜’와 같은 부사들이다. 불현듯 마주친 모습이 예전과 달라진 곳에서는 감탄사가 신음처럼 새어 나왔고 돌아설 때는 부사들이 혼잣말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런 일이 잦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주가 변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변화로 인하여 도시가 발전을 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변한다는 것이 반드시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마다 제각각의 성격이 있고 그 개성으로 인하여 주목을 받는다. 개성은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경주처럼 나라 안 여느 도시가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인문조건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경주는 도시 한가운데에 왕릉이 수십 기나 솟아있고, 거니는 곳곳에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유적들이 즐비하다. 또 도심과 맞닿은 남산은 한발 한발 뗄 때마다 불교 유적과 마주치니 환희에 찬 곳이다. 경주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올해 봄 가장 놀랐던 일은 천관사터(天官寺址)로 향할 때였다. 김유신이 말의 목을 단칼에 잘랐다는 잔혹한 이야기가 서린 절터에 무엇인가 우뚝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복원하고 있는 삼층석탑이었는데 현존하는 신라의 석탑 중 이형(異形) 석탑으로 손꼽힐 사각형의 기단에 팔각형 지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앞에 말했듯 너무도 달라진 절터의 모습이 서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관사터는 약과였다. 머뭇대다가 몸을 돌리니 찬란한 월정교(月淨橋)가 남천에 걸려 있었다. ‘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벅수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과연 저것이 신라의 양식으로 만든 다리일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전 단박에 꼴불견이었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신라의 아름다움은 지독하리만치 정밀하여 엄격하다고 말이다.

경주시에 묻고 싶다. 과연 저 월정교가 신라의 다리가 맞느냐고 말이다. 복원을 핑계 댄 어설픈 재현으로 마치 신라인 듯 포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지난해도 그랬고 지난해도 그랬지만 올해 봄 경주는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대 놓은 논과 같다. 그래서 걷기가 불편하다. 빠진 발은 천근만근이고 천관사터와 월정교 앞에서 허물어진 마음이 고약하게 불거지는데 달랠 방법이 없다. 종일 꽃나무 아래에 앉아있으면 괜찮아지려나. 얼른 벚꽃이라도 활짝 피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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