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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30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도 수만명의 조문객이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 직장인 등 다양한 시민들이 줄지어 선 풍경은 그가 얼마나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추모 열기는 전국의 36곳 분향소를 넘어 베이징,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 한인사회에도 이어졌다. 손편지·방명록·포스트잇·홈페이지를 통한 추모 메시지가 넘쳐나고, 정의당에는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고 한다.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26일 추모의 글을 적은 종이를 장례식장 입구에 붙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고인을 애도한 5일 동안 시민들은 정치인 노회찬의 삶과 꿈을 되새기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빈소와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혼자만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다” “노회찬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20대 용접공 시절부터 진보정당의 원내대표를 지내기까지 30여년 동안 곁눈질 한번 없이 약자를 대변했다.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자와 서민 보호 등 진보적 가치에 충실한 법안들을 발의하는 데 힘을 쏟았고 정치개혁에 앞장섰다. 7년간 그는 법률안 945건 등 1029건의 의안을 발의했다. 호주제 폐지, 장애인 차별금지, 대체복무, 개인정보보호, 고교 무상교육 등 굵직한 진보적 의제들이 그의 손을 거쳐 현실이 됐다. 여성·장애인·비정규직 차별을 깨는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한 시민은 “그때 왜 힘이 돼주지 못했나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했다.

그의 죽음은 비통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중한 과제를 남겼다. 정치인 노회찬이 추구했던 정치는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 가치의 정치였다. 시민들은 그를 잃고 나서야 그가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가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고인은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진보와 정의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 부조리하고 몰염치한 행태가 만연한 사회에서 건강한 정치인이 먼저 떠난 것은 상실이 크다. 그러나 노회찬의 열정과 꿈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건 산 자의 책무다. 이제는 고인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때다. 그것이 ‘노회찬 정신’을 부활시키고 상심을 승화하는 길이다. 27일은 고인의 발인이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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