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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수감됐다. 사법부의 전직 수장이 구속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나, 당연한 귀결이다. 법원은 사법농단의 ‘주범’을 제 손으로 구치소에 보냄으로써 법의 엄중함을 보였다. ‘방탄 판사단’이라 비판받아온 법원도 헌정질서를 뒤흔든 사법농단의 중대성을 외면하기 어려웠으리라 본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정의 실현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진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24일 영장을 발부하며 밝힌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혐의가 소명되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한 증거들이 제출된 데 따른 판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서 주심 대법관에게 “국제법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를 직접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에 대법원장 지시를 뜻하는 ‘대(大)’자가 적힌 점 등도 영장 발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월25일 (출처:경향신문DB)

또 다른 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줄곧 “기억이 안 난다”거나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지난 2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는 후배 판사들이 모함했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 기자회견을 강행하는 등 오만하고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인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법하다. 최고의 심판자에서 ‘미결 수용자’로 전락한 양 전 대법원장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털어놓고 사죄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끝이 아니다. 진정한 단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검찰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길 때까지 치밀한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전·현직 법관들이 기소되면 공정한 재판이 과제로 대두할 것이다. 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특별재판부 구성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현직에 남아 있는 법관들이 법대에 다시 서지 못하도록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재판청탁’에 연루된 정당들은 소속 전·현직 의원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옳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시 한번 송구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저의 마음과 각오를 밝힐 수 있을지 (드릴 말씀을) 찾을 수도 없다”고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의 사과가 진심일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를 폐허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대법원장이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하고 사법을 사유화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관료적 사법행정 체계를 개편하는 일이 급선무다. 법원 주도하에 외부위원을 포함시키는 ‘사법행정회의’ 수준으로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법관들이 ‘좋은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면적 개혁에 나설 때다.

우리는 온갖 고통과 핍박 속에서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헌신해온 법관들을 기억하려 한다. 2017년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로 저항했던 이탄희 판사의 용기가 없었다면 사법농단은 아직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판사처럼 소신 있고 양심적인 법관들이 적지 않기에, 사법부가 오늘의 치욕을 딛고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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