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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과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14년 만에 다시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대법원에서 따로 심리 중인 두 건의 병역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오는 8월30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관들 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거나 기존 판례를 바꿀 때 전원합의체를 가동한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전원합의체를 통해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회는 병역 의무를 강조한다. 힘없는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거나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용인하지 못하는 정서가 강하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스라엘·캐나다·호주 등 상당수 국가들이 헌법 또는 법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한다. 종교적·윤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을 강제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병역 의무는 대체 복무로 가능케 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한국에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해마다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지난 한 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의 무죄 선고가 52건에 달했고, 올해는 100건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과의 괴리를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체복무가 현역 복무와 형평이 맞지 않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가장한 병역기피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제도로 보완할 수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정부의 10대 인권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정부와 국회도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을 논의해왔다. 헌재도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한 세번째 위헌심판을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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