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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이 500명을 넘어섰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집계결과 올 들어 5월 말까지 제주에서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이 942명이며, 이 중 515명이 예멘인이다. 제주에 예멘 난민 신청자가 급증한 것은 지난해 12월 제주와 말레이시아 간 직항노선이 생긴 영향이 크다. 2015년 시작된 내전을 피해 예멘을 떠난 사람들이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제주까지 온 것이다. 도착한 예멘인들은 법무부 산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신청을 한 뒤 싼 숙소에서 새우잠을 자며 난민 판정을 기다린다. 도중에 돈이 바닥나 길거리에 나앉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제주가 대량 난민을 수용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랍인 공동체가 있는 서울이나 안산 등지로 옮겨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법무부가 거주지역을 제주로 묶어놓고 있다. 법무부는 “무사증 제도로 인한 문제를 제주도 외 국민이 부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무사증 입국·난민신청허가 폐지 및 개헌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에 18일 오후까지 22만명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난민신청을 받아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주는 것이 자국민의 안전과 제주도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우려와 의문이 든다”며 “대한민국이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인 손길을 내줄 위치에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원 게시판에는 “그 사람들 중에 IS나 극렬 이슬람주의자 테러리스트가 없다는 걸 누가 보증하나”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난민 문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반세기 전까지 대량으로 난민을 배출해온 나라였다. 구한말 농민들이 간도로 이주했고, 제주 4·3 때 많은 이들이 제주도를 탈출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고아들이 미국, 유럽 등지로 입양돼 갔다.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등으로 많은 이들이 나라를 등지고 타국에 몸을 의탁해야 했던 아픔의 현대사를 겪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인 경제대국이 됐다. 난민을 보듬는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다. 난민 문제는 이제 어느 나라도 외면하기 어려운 지구촌 공통의 과제가 됐다. 지금도 지중해에서는 수많은 난민들이 조각배에 몸을 맡긴 채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제주 예멘인들의 문제를 자치단체에 맡겨두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한국의 난민수용 인프라를 정비하고 확장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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