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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로 구속된 위장 탈북자 홍모씨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탈북 브로커 유모씨를 중국 국경으로 유인한 뒤 납치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 보위부 지령을 받고 남파돼 간첩 활동과 탈북자 납치를 시도했다는 검찰의 공소장은 허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조작된 서류로 간첩을 만들었다가 무죄가 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유우성씨에 이어 검찰의 무리한 공안수사가 또 한번 도마에 올랐다. 공안 검찰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할 뿐이다.

홍씨 판결문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국정원과 검경 조사 과정의 모든 증거 능력이 무시됐다. 유일한 증거인 홍씨의 자백은 허위로 간주됐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굴욕에 가깝다. 판결의 핵심은 조사 과정에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조력권이 보장됐느냐의 여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국내 법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 없이 조사를 받으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됐을 것”이라며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취지를 밝혔다. 변호인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는 판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3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설명회'에서 당사자인 유우성씨(오른쪽 두 번째)와 장경욱 변호사(맨 오른쪽)가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간첩 혐의의 사실 여부를 떠나 당국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은 수사의 ABC에 속한다. 설사 간첩 혐의로 조사받는 피고인이라도 인권은 인권이다. 재판부가 “피의자의 권리가 고지되지 않았거나 됐어도 불분명·불충분했다”고 한 부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간첩몰이에 눈먼 국정원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인권의 보루를 자처하는 검찰마저 이를 무시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진술 과정을 녹화한 영상기록물도 없었다고 하니 도대체 검찰이 수사를 어떻게 한 것인가. 검찰은 “억울하다”고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현 정부 공안당국의 실상은 곁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지경이다. 법원 증거자료 조작도 모자라 최근에는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들의 무더기 영장 기각으로 또 조롱거리가 됐다. 정권 전위대를 자처한 과거 공안의 부활을 걱정할 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수사권 폐지의 당위성도 새삼 입증됐다. 연이은 간첩조작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특검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공안에 대한 국민불신은 이미 도를 넘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검찰 조직 전체가 정치검찰로 매도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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