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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청와대와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조속한 시일 내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주52시간제의 문제점을 탄력근로제를 통해 보완하자는 데 여야가 동의한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야 이해하지만, 제도 도입을 서두르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만큼이나 기업에는 큰 변화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선진국형 근로 방식을 통해 이른바 '워라밸'(일과 업무의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취지는 대기업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날로 격화하는 글로벌 경쟁 상황 속에서 신제품 개발, 글로벌 네트워킹 등을 위해서는 몇 개월씩 밤낮으로 집중 근무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탄력근무제 적용 확대 등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탄력근로제는 일이 많으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없을 때는 줄여 특정 기간의 법정 평균노동시간(주 52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지난 7월 도입된 주52시간제법은 3개월 이내의 단위시간 안에서 법정 평균노동시간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합의의 취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통해 현행 최대 3개월인 단위시간을 6개월~1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6일 언론 인터뷰에서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때 모든 것을 미리 정하게 하는 부분을 완화하려고 한다. 현재 단위기간이 적절한지, 6개월이나 그 이상으로 늘리는 게 바람직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탄력근로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던 전임 장관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하며 정기국회 처리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아동 복지 문제 등 현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장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된 것은 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주52시간제가 제대로 시행되어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장이다. 지금은 이 법이 정착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주52시간제 법안이 통과할 당시 탄력근로제 확대는 2022년까지 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제도가 안착되기도 전에 서둘러 개선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주52시간제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탄력근무가 확대되면 노동이 특정시간대에 집중되면서 산재의 위험성을 높이고 더 많은 과로사를 부를 수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탄력근로제 확대반대 투쟁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탈퇴까지 경고했다. 여·야·정 협의체에 참여한 정의당도 반노동자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고려하며 시행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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