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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절차를 무시한 채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도록 명령한 것은 위법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저자들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상대로 “교과서 수정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교과부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소송은 정부가 2008년 보수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역사교과서 55곳을 수정하라고 명령한 게 발단이 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심리결과가 갈리며 4년 이상을 끌어온 소송에서 대법원은 저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정부가 권한을 남용해 교과서 개편작업에 개입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소송은 대통령령에 규정된 장관의 수정명령 권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다. 정부는 ‘장관은 검정도서의 경우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역사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고 명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타나 잘못된 삽화를 바로잡는 단순한 수준의 ‘수정’이 아니라 전체 교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재량권을 넘어선 것으로 봤다. 이는 새로운 검정절차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수정명령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용인하면 ‘행정청이 수정명령을 통해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잠탈(불법적인 방법으로 회피하는 것)할 수 있다’고 했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저자인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가 교과서 발행 중단’ 판결이 내려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교과서 편향성은 청소년들의 역사관과 직결된 사안이다. 관이 주도해온 개편작업을 전문가들의 검인정 체제로 바꾼 것도 이 같은 부작용과 잦은 개편에 따른 혼선을 막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교과서 개편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교과서에 손을 댈 정도로 집착이 강했다. 지난해 정치 편향성을 이유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도록 요청해 문제가 됐다. 2010년에는 장관의 수정 권한을 강화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정부는 아직도 이 법안에 미련을 갖고 있다. 임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같은 법안을 일부 내용만 바꿔 또 제출했을 정도다. 우리는 정권 입맛대로 역사교과서를 바꿀 경우 독재시대의 국정교과서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관련 법안을 철회하고 ‘맘대로’ 개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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