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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 언론인 대량 해직은 유신정권의 대표적 언론탄압 사례로 꼽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판단이 내려졌고, 역사적 평가도 사실상 끝난 사안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이를 뒤집고 나섰다. 대법원은 ‘동아일보가 박정희 정권의 압력을 받아 기자들을 해고했다’는 진실화해위 결정을 ‘증거 부족’을 이유로 취소 처분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역주행’의 연속선상에 놓인 판결이다. 퇴행을 거듭하는 사법부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대법원은 동아일보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진실화해위가 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진실화해위는 2008년 “박정희 정권이 언론탄압을 한 만큼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결정했다. 동아일보에도 기자들에 대한 사과를 권고했다. 동아일보가 불복해 소송을 냈으나, 1·2심 재판부는 법원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3년 “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면서 새로 재판이 시작됐다. 이후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보태지며 사법부의 추는 동아일보 쪽으로 기울었다. 당시 전원합의체 판결은 국가폭력을 국가 스스로 조사해 책임진다는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동아일보 사태를 심리한 법원은 이 판례에 따라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2년간 수집한 증거를 추론·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다.

30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긴급조치' 판결 관련 기자회견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민변을 비롯한 긴급조치피해자모임등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를 국가배상법상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본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출처 : 경향DB)


대법원의 퇴행적 판결을 나열하는 일은 이제 진부할 지경이다. 지난 3월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여서 불법이 아니다’라는 모순적 판결을 내렸다. 앞서 1월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당한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13년에는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시효를 ‘형사보상 결정일로부터 6개월’로 좁히는 새 판례를 만들었다. 이 판례 전 손배 청구 시효는 3년이었다. 대법원은 이러고도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자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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