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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이들을 독자 삼아 쓴 짧은 글들이 꽤 널리 퍼졌다. 현직 교수가 쓴 글들이었다. 잠재적 대학원 지원자들을 격려하거나 상찬하는 글이 아니었다. 그 서너 편의 글은 대학원 진학 결심을 재고하게 만든다.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며, 대학원 수학 기간은 결국 시간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더구나 국내 대학원을 갈 이유는 없다고 냉랭하게 말한다. 굳은 결심 없이는 함부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에 은유와 반어법을 입힌 것이려니 하지만, 읽는 사람의 입은 쓰고 눈은 커진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작년에 새로 ‘박사’가 된 사람은 1만4300명이다. 석사 취득자는 8만명이 넘는다.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했든, 이들이 학위를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나이롱’ 석·박사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겠지만, 소수의 예외 때문에 다른 10만명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동시에, 그 괴로운 시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갑자기 큰돈을 벌거나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매년 이 모습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 커지다보면 대학원 진학을 말리게 되는 것이리라.

대학원은 왜 존재하며 누가 다니는가?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 대해 잘 모르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찌 다 알겠는가. 심지어 (나를 포함한) 교수들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대학원 생활의 전형적인 풍경은 전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학의 역사나 문화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고, 당연히 옛날과도 다르다. 교수가 담배 심부름 시키는 시대도 아니고, 푼돈 받으며 열정페이 노동과 감정노동을 강요받는 대학원생 사례도 거의 없어졌다(고 믿는다). 모든 석·박사 졸업생이 교직, 연구직으로 진출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연구자 지망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공과 학교, 시기를 불문하고 똑같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직장인 재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특수대학원이나 의학·법학 전문대학원 등을 예외로 한다면, 대학원은 ‘학자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졸업 후 무엇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능력이지만, 최소한 대학원에 있는 몇 년 동안은 학자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박사는 물론 석사과정에도 이 말은 적용된다.

그렇다면 ‘학자’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져야 마땅하지만, 그저 학자가 직업을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정도로 넘어가자. 대학원이 배출한 학자는 전공과 무관한 취업을 할 수도 있고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물론 교수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한 독립 연구자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학자’가 되기 위해 받았던 훈련이 어떤 방식으로든, 크건 작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그 사람이 선택한 일을 해나가는 데에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안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고, 면밀하게 분석·비판하고, 총체적으로 통찰하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하는 학자의 자세는 교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 수가 줄어들고 문 닫는 대학도 늘어나니 대학 안에서 자리를 잡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안타깝지만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학원을 가지 말라고 말한다면 대학원 교육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닐는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거나 ‘학자’가 되고 싶은 이들이 대학원에 가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수’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말려야 하지만 말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러니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내가 과연 교수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다. 가려는 대학원이 친구들과의 독서동아리보다 과연 무엇이 나은지 물어야 한다. 다른 금전적, 사회적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진학할 만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직업이나 학위 ‘증’이 일차적 목표라면 진학하지 않는 편이 낫고, 정말 실용적 지식을 원한다면 기업의 사내교육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매년 배출되는 석·박사 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많은 대학원들이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평가도 반박하기 어렵다. 반대로,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자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교수들의 불만에도 동의한다. 역설적이지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이들의 냉정함이 ‘대학원의 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대학원을 교수 직업 훈련소로 간주하는 이들은 차가운 현실을 인식해서 진학을 포기해야 하고, 진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원 대신 동네 백화점 교양강좌를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취업도 못 시키고 ‘학자’ 양성에도 소홀한 대학원들은 자연스레 도태될 수 있도록.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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