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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민주통합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인사 문제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검증 시스템을 보강해 잘못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거센 자질 논란에 휩싸인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쌓은 실력이 있으니 지켜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번주 내에 윤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인사 참사’와 관련해 직접 사과한 것은 늦게나마 다행이지만 윤 후보자에 대한 입장은 실망스럽다.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윤 후보자 지명부터 철회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윤 후보자를 두고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청문회에서 너무 당황해 머리가 하얘졌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잘해보겠다고 하더라”며 적극 옹호했다. 청문회를 본 국민들이 윤 후보자의 전문성 외에 ‘장관감으로 보기 힘든’ 태도 역시 문제삼고 있음을 도외시한 발언이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분야에 여성을 키우려는 생각으로 발탁했다”고 한 대목이다. 뜬금없다. 내각 18명 중 여성은 윤 후보자를 포함해 2명뿐이고 청와대 실장·수석 12명 중엔 여성이 전무한 실정이다. 인사 과정에서는 여성 기용 요구를 외면하더니, 이제 와서 몇 안되는 여성이니 봐달라는 건가. 문제는 성별이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질이 부족한 인사는 고위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답변하는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 내정자 (경향DB)


해수부 부활과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새 정부 조직개편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이 윤 후보자 임명을 밀어붙이는 까닭도 해수부 출범 지연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 취임50일째인 오늘까지 내각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자격 미달 선장을 억지로 태워 닻을 올린다 한들 배가 순항하겠는가. 출범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전문성과 리더십을 고루 갖춘 새 선장으로 교체하는 게 순리다.


박 대통령은 만찬에서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위해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한다.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고 소통을 복원하려는 노력일 터이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야당 지도자의 생일 축하 이벤트가 아니라 야당이 전하는 국민의 뜻을 경청하는 데서 비롯한다. 박 대통령은 설훈 의원의 고언대로 “용기를 갖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주당도 정신 차릴 때다. 윤 후보자에 대한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데, 대통령 사과는 대통령 사과고 후보자 자질은 후보자 자질이다. 헷갈렸다가는 ‘청와대 밥 한 끼에 집단으로 인사청탁 받은’ 격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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