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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9시,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3·20 사이버 테러’ 중간 조사결과 발표를 위한 민·관·군 합동대응팀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엄밀히 말하면 국정원의 브리핑에 가까웠다. 한 참석자는 14일 “국정원의 한 간부가 자료 설명을 했고, 이어 민간 관계자들의 질문을 받는 형식이었다”고 전했다. 50여쪽 분량의 자료 설명이 이뤄졌지만 까다로운 질문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회의는 한 시간여 만에 끝났다. 국정원의 브리핑 내용은 일부 축소·요약된 채 미래창조과학부의 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졌다. 


합동대응팀이 10일 경기도 과천 미래창조과학부 기자실에서 해킹 관련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발표의 핵심은 사이버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란 것이다. 그 근거로 ‘175.45.178.xx’ 등 북한 지역의 인터넷주소(IP)가 발견됐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국정원의 자체 조사결과이며 로그기록 등은 정보당국만 확인했다. 또 북한 정찰총국 등이 주로 사용해왔다는 경유지 정보 또한 ‘국가기밀’이란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 중인 만큼 정보당국이 북측을 우선 의심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의 가능성일 뿐 단정할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해커가 6개 방송·금융사에 최초로 악성코드를 심은 경로 등 핵심 내용은 여전히 파악조차 되지 않았고 국가 간 공조도 없었다. 더구나 해킹피해를 봤던 신한은행은 정보당국이 발표한 악성코드 유포방식이나 공격시간과 달랐다. 이 때문에 신한은행의 사례를 제외하고 조사결과를 발표해 국정원 스스로 신뢰를 훼손했다. 국정원이 서둘러 독자적인 발표를 내놓은 배경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섣부른 단정은 해킹 수사 및 테러 방지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국정원은 사이버 테러를 기회 삼아 덩치를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사고 있다. 해커 세계에선 “해커들에게 한국은 가장 편안한 곳이다. 누가 해킹을 해도 북한 소행으로 결론내기 때문에 잡힐 염려가 없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정보당국은 이를 새겨듣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북한’이 해킹 대응 미흡이나 수사 실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홍재원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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