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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5개 혐의가 인정됐다. 하지만 2심에서는 최순실씨 측에 준 용역대금 일부만 인정되고 나머지 혐의는 대부분 파기됐다.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압에 못 이겨 돈을 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최씨를 소극적으로 지원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질책받은 사실을 들어 강요에 의해 돈을 줬다고 본 것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해서는 승마지원과 관련해 공모관계를 인정해 범죄의 주체로 보았다.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혐의에 면죄부를 주었다. 결국 “이 사건에서 권력층과 재벌 간에 돈을 매개로 이뤄지는 전형적인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심리하며 법과 양심에 따라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재판부는 쟁점이 되었던 사안 대부분에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가장 중요한 삼성 승계작업과 관련해 1심의 판단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재판부는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인 현안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승계작업을 위한 묵시적인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항소심에서 특별검사가 청탁의 유력한 증거로 제출한 ‘독대(이른바 0차 독대)’도 증거가 없다며 제척했다.

그러나 삼성 재판을 지켜보았던 시민의 눈높이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유착관계를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와 증인들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첩과 메모는 사초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내용이 구체적이고 방대하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직접증거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줬다. 법원은 “직무관련성과 대가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의 관계는 한국의 고질적인 악폐인 권력과 재벌의 유착이 낳은 것이다. 따라서 시민은 이번 재판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전기가 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시민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다. 재판부는 “전형적인 정경유착은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상속받기 위해 권력에 뇌물을 주는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저질러진 부정부패 사건이다. 그 과정에 국정농단까지 있었다.

세계 굴지의 재벌이라도 법과 상식에 통하지 않는 경영을 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에 응당한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이런 판에 앞으로 재벌과 권력 간 줄대기가 멈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 재판이 남아 있다.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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