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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산골 리조트 마을 다보스라는 곳에는 매년 1월 말이 되면 세계 주요 정상, 장관, CEO, 사안별 전문가, 그리고 유명 언론인들이 다 모여든다. 이들은 이곳 다보스에서 서로 만나 사업 협상도 하고, 세계의 주요 흐름을 살피기도 하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포럼이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이다.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막연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하여 중국이 책임지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국제질서를 수호해 갈 것을 선언하였고, 그로 인해 세계의 리더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서막이 올랐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하였다.

지난 1월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다보스 포럼은 작년의 시진핑 주석의 기세를 이어 인도의 모디 총리가 지난해 시진핑 주석의 선언과 맥을 같이하는 개막연설을 하였고,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정상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세계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다보스에서는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위기와 이를 지키려는 각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폐막 연설 참석을 깜짝 발표하면서 폐막 연설에서 미국제일주의가 미국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세계에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돌아갔다. 다보스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어지는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응한 수비 연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은 여전히 미국제일주의이지만 수사는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를 의식한 연설이었다.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나름대로 이탈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다보스라면,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을 읽을 수 있는 곳도 다보스다. 거리에서 우연히 한국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피카부’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는 다보스의 소녀들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뻗어 온 한류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역시 만날 수 있었던 곳이 이번의 다보스였다. 북한 문제에 관하여 다보스 포럼 측에서 갖는 관심을 반영하듯 관련 세션도 여러 개 열렸고, 세계의 언론도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나도 관련된 대부분의 세션에 참여하였고 참석자들의 발언을 면밀히 관찰하였는데, 다보스에서 알 수 있는 한반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평창 올림픽 이후의 북한 핵 문제”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세계의 안보 문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과연 이 지역이 안정적으로 잘 관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올림픽이야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국제사회가 한국을 도와주겠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는 그대로 이전의 모습으로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으로 인하여 북한과 미국과 국제사회가 핵 문제와 관련하여 변한 것이 없을 터인데, 잘못하면 우리만 변하지 않는 북한에 호의적인 정권으로 비쳐 미국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세계의 우려는 현실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정은과 최대 압박을 통하여 핵을 포기시키려는 트럼프라는 두 강성 지도자가 다시 맞붙는다면 긴장 수위가 계속 높아져 한반도의 미래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부시 대통령의 2002년 “악의 축” 연설을 상기시키는 북한에 대한 경고를 1월30일 연두교서에 포함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그 연설 이후 실제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바 있다.

그 다음날인 1월31일에는 미국의 북한 예방타격을 반대하는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 빅터 차 교수의 임명을 철회하였다. 북한에 대한 강성 메시지를 연거푸 보내고 있다. 우리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그 모멘텀을 유지시키려면 겨우 재개된 남북대화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성사시켜야 한다.

문제는 북한은 항복하는 형식으로 북핵을 포기하는 대화에는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 문제에 항복하면 다른 문제도 끝까지 밀려서 결국에는 정권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자체진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항복이 아닌 북핵 포기의 협상 구도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우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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