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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어제 30년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퇴임했다. 한국 헌정 사상 처음 대통령 탄핵 재판을 이끈 그는 퇴임사에서 헌법과 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역설했다. 이 권한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놓고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올 때 “진실은 밝혀진다”면서 마치 거짓에 근거해 탄핵된 양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그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춘추전국시대 <한비자>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이어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며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를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퇴임식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의 담백한 퇴임사는 화려한 수식어로 꾸며진 인사말보다 울림이 크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그는 헌법 가치에 천착했고, 흔들리지 않는 인내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통령 측 대리인이 주심 재판관을 향해 “청구인(국회)의 수석 대리인이냐”고 막말을 했지만, 이 권한대행은 재판부 권위로 내리누르기보다는 뒷목을 잡고 참으며 “공정하게 재판을 하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은 국민이 모두 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끌기에 불과한 대통령 대리인들의 장광설을 들어주면서 편파시비를 없애려고 했다. 이를 통해 이 권한대행이 이끈 헌재는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출된 권력도 법에 의하지 않고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헌법의 정명(正名)을 다시 한번 못 박아 선언했다.

헌법재판소 역대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인 이 권한대행은 현재 헌법재판관 중 사법시험 기수도 가장 낮다. 또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엄중한 사건이 주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만장일치 결론을 도출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가 탄핵심판 선고일에 출근할 때 깜빡하고 빼지 못한 분홍색 헤어롤 2개는 이 시대 일하는 여성의 집중과 노고, 노력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 권한대행은 이날 4분50초짜리 퇴임사와 꽃다발 증정을 끝으로 소소한 퇴임식을 마친 뒤 헌법기관장에서 시민으로 돌아갔다. 그의 절제된, 그러면서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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