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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밤 별세했다. 이 이사장은 가족과 지인들의 찬송과 기도 속에 향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인동초 부부’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헌신한 고인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린다.

이 이사장은 정치인 김대중에게 반려 이상의 존재였다. 김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 길을 내내 함께 걸었던 정치적 동지였다.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해외에서 투쟁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흔들림 없이 싸우라고 편지로 격려했고, 옥중의 김 전 대통령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의 메시지를 바깥 세상에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벼린 것이 이 이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엔 그 유지를 받들어 민주진보 진영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차례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고단했지만 빛나는 삶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6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이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기에 앞서 한국 여성의 권리 향상에 헌신한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당대에 드물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YWCA 총무 등 여성단체 활동에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후 동교동 집 대문에 나란히 내건 두 사람의 문패는 양성평등의 상징과도 같았다. 김 전 대통령이 주도해 13대 국회를 통과한 가족법 개정안에는 고인의 의지가 묻어 있었다. 여성부 신설과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 등 시대를 앞서간 김대중 정부의 여성 정책에 미친 고인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고인은 최근 부부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국민’에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다.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 이사장의 유지대로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넘어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인이 천국에서도 기도하겠다고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도 완성해야 한다. 10년 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이 이사장은 “아프고 견디기 힘든 인생을 참으로 잘 참고 견뎌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며 작별을 고했다. 오래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시민들이 그 인사를 되돌려드린다. 고인의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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